통과의례같고 섬돌같은 자살시도

등록 2009.09.11 12:54수정 2009.09.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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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들어가면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온다고 한다. 손짓만 하면 금세 다가올 것 처럼 항상 옆에 있다고도 누군가 말했다. 살면서 그 말을 너무나 실감을 하지만 생활 속에 친숙하고 낯설지 않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시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고 성년이 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후로도 유달리 형제가 많은 엄마의 오빠와 언니인 외삼촌, 큰 이모 같은 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의 내게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 아닌, 일 년에 몇 번 있는 제사처럼 친척들이 왁자지껄하게 한바탕 모이는 슬픈 큰 잔치 같았다. 생활 속에 이어지고 다른 방으로 가려면 넘어야 하는 문 턱 같은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졌다.

 

중학교 때 나는 손목의 동맥을 끊어보려는 자살기도를 한 적이 있다. 언어장애와 청각장애가 점점 심해져서 학교에서 방송수업시간에 프린트물이 아닌 책을 꺼내어 놓고 보다가 당번감독 선생에게서 출석부로 머리를 모질게 맞고 온 날이었다. 중풍걸린 시모님의 병간호에 일곱 형제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휘는 엄마에게 나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나누어 더 등짐을 지게 해드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내어 "엄마! 국어선생님이 빨간 교육메모가 적힌 자기의 교과서를 빌려 주었어요!"라든가 "엄마! 오늘은 누구누구랑 같이 도시락을 먹었어요!"하는 희망사항일 뿐인 훈훈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명랑하고 좋은 하루를 보낸 양 엄마에게 막내스런 아양을 떨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청각장애가 있고 남루하게 어디선가 구해서 팔꿈치부분을 짜깁기 해준 남루한 교복을 입고서도 중.고교를  꿋꿋하게 잘 다니는 줄 알고 안심하셨다.

 

학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거나 선생님들에게 찍혀서 매일 혼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말을 들을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이 그냥 가만히 앉아 견디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 중에서 정말로 힘든 것은 교내합창 때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하면서 자존감이 손상되는 것을 견디는 것이었다. 학교생활의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 나는 하루마다 일년씩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내일도 이런 학교생활의 반복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절망스러웠다.

 

병든 아버지는 술 한 잔에 18번 노래를 부르고 과거의 실패를 한탄하시며 잠드셨고, 어머니는 하루에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채찍질을 당해 쓰러진 것처럼 긴 한 숨을 내쉬면서 밤내내 바느질을 하셨다. 떨어진 교복은 더 이상 입기 싫었고, 우유값이나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항상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것도 지겨워지고, 가끔 귀머거리라고 놀리는 반의 짓궂은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싫어졌다.

 

그래서 가난과 장애와 왕따와 엄마의 한숨이 손을 잡고 덤벼드는 하루의 흐름을 그만 잘라 버려야겠다고 작정했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면도칼로 왼 손 동맥을 그은 것이다.

 

피가 철철 흐르고 이불끝자락이 피에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상스럽게 붉은 피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내가 이렇게 생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내가 이렇게 스스로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수없는 의문이 화산처럼 솟구친 것이다.

 

화산같은 분노와 수없는 의문은 눈물과 함께 솟구쳤다. 울다 잠이 든 것인지, 피를 흘려 가물해서 정신이 희미해졌던 것인지 아득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이 들어 깨어보니 맑은 푸른 빛이 감도는 새벽이었다.

 

동맥은 건드리지 않고 정맥 몇 개만 건드렸던 모양인지 피는 멈추어 있었다. 헝겊을 손목에 감고 이불을 큰 대야 담아 발로 밟았다. 엄마가 물으면 생리혈이 넘쳤다고 둘러대야지 하면서...

 

그리고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멀리서 쳐다보기만 한 교장선생님을 만나려고 까치발을 하고 지나갔던 교장실의 문을 씩씩하게 두드렸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었고 손해볼 것 이 없다는 배포가 생겼던 것 같다.

 

교장선생님에게 수업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에게 내 장애를 공지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담임에게도 내가 회비나 급식우유값을 못 낸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지 말아달라고 말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학교생활이 달라졌다. 한 번 죽고자 했더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자리는 맨 앞에 배치되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깨알같이 메모한 노트가 매 시간마다 교대로 전해졌다. 성적은 갑자기 상위권에 올라갔다. 그래서 그런지 무사히 인문계고등학교 진학하는 연합고사에도 패스하고 예쁜 베레모를 쓰는 갈래머리를 땋은 여고생이 되었다.

 

멋도 모르고 시도했던 자살시도였지만 그로 인한 육신의 아픔과 충격은 나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변의 왁자지껄했던 친척들의 그 어떤 죽음도 그렇게 5센티의 면도칼처럼 내 피부 속에 스며들어오지 않았다.

 

깊이 내 피부 속에 들어와 동맥을 자르지 못했지만 절망을 건너게 했던 하나의 통과의례같았던 사춘기의 자살시도는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내 마음의 섬돌같은 오래된 추억이다. 그러한 추억으로 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조금 흔들렸을 뿐 내 삶의 정체성까지는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죽음에 대한 이야기 공모

2009.09.11 12:54ⓒ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죽음에 대한 이야기 공모
#자살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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