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경기가 V자 회복세라고 점치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지만 일선 기업들은 그동안 삭감한 수당이나 상여금을 좀처럼 올려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단적인 예다.
이미 직원을 15명가량 잘랐고, 상여금을 200% 삭감했으며, 각종 보너스도 다 줄였다. 1년간 시행이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내년 말까지 이런 방침이 이어질 것이란다. 정말 우울하다. 내야하는 세금은 계속 오르고 돈 들어갈 곳은 느는데 돈 들어오는 곳은 함흥차사니.
곧 다가올 추석은 또 어떡하나. 상여금은 어림도 없다. 몇몇 대기업은 실적이 좋아 상여금 등 돈 잔치를 한다고 하는데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 금고에 많은 돈을 쌓고 투자 여력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자 서민들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문제다. 분명 공공 영역이 나서줘야 하는데, 이 나라 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엊그제 저녁 아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임신한 거 같아""아 정말? 나는 아빠, 당신은 엄마가 되는 거야?" 마음은 정말 기뻤다. 하지만 닥칠 현실을 생각하니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한 건 크나큰 축복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습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아기 기저귀며 분유 값, 아내 병원비, 각종 아기용품 등 머릿속은 온통 아기가 생기면서 따르는 지출 항목뿐이다.
요즘 강남 아이들이 간다는 영어 유치원? 지금 내 형편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결혼도 어렵게 했지만 정말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어깨에 팍팍 와 닿는다. 기뻐하는 아내 얼굴을 보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주말에 아르바이트라도 나가 봐야 되겠어. 물가나 기름 값, 세금은 계속 치솟고 있으니 저축은 고사하고 당장 대출금 이자 내는 것도 빠듯하잖아." 그러자 집사람이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린 아직 젊잖아, 신혼 때 좀 더 아끼고 고생하자. 노력하면 잘 되겠지." 현실은 고달파도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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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상여금 다 깎였는데... "여보, 나 임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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