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지는 거 아냐?"

[현장] 신세계-롯데 '영등포대전', 떨고 있는 지하상가

등록 2009.09.10 16:40수정 2009.09.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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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이 9월 16일 재개장하면 인접해 있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과의 사상 유례없는 유통대전이 불가피하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이 9월 16일 재개장하면 인접해 있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과의 사상 유례없는 유통대전이 불가피하다. 최경준

'신세계'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이마트'다. 국내산은 물론 외국산까지 모두 물리치고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형할인마트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세계가 이마트가 아닌 백화점을 밀기 시작했다.

롯데·현대백화점에 이어 '만년 3위'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몸부림 치고는 상당히 공세적이다. 상대와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일단 3~4배는 덩치를 키워놓고 싸움을 건다.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가 그랬다. 세계 최대 규모인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올 초 개장 이후 3개월만에 매출 16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예상밖의 호조로 롯데의 부산지역 독주체제를 위협했다.

부산에서의 불꽃 경쟁은 이제 자리를 옮겨 서울 영등포에서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신세계는 약 9개월간의 '리뉴얼'을 마치고 오는 16일 영등포점을 재개장 할 예정이다. 경인로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는 롯데 영등포점과의 사상 유례없는 전면전이 불가피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현대 목동점이나 구로동 AK플라자와도 한판 승부가 예고되어 있다. 영등포 유통가에 벌써부터 전운이 감도는 이유다. 문제는 이들 대기업 유통 업체들 간의 사활을 건 경쟁에서 영등포 지하상가를 비롯한 주변 소상공인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지상에서 벌어질 '그들만의 전쟁'이 지하상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힘없는' 상인들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내년 말, 상위 10개 중 5개는 신세계가 차지할 것"

신세계 영등포점 역시 '규모의 경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신세계 영등포점은 원래 1984년 서부상권 최초의 백화점으로 출발한 '터줏대감'이다. 롯데 영등포점이 들어선 것은 7년 뒤인 1991년이었다. 신세계 영등포점은 2007년 12월 바로 옆에 있던 경방과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한 뒤, 지난해 11월 영업을 종결한 이후 9개월여 만에 4배 크기의 규모(매장면적 43,174㎡, 1만3060평)로 재탄생했다. 롯데 영등포점보다 약 6500㎡(2000평)가 더 커진 것이다.


특히 신세계 영등포점은 경방을 재개발해서 만든 복합쇼핑몰인 타임스퀘어 내에 자리 잡게 됐다. 그 규모가 연면적 362,000㎡(10만9500평)로 매머드 급이다. A관 패션관(구 경방필 백화점 26,645㎡, 8060평), B관 전문관(구 신세계 영등포점 10,016㎡ 3030평), 그리고 명품관(타임스퀘어 쇼핑몰 1층 6,612㎡ 2000평)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상10층, 지하2층, 주차대수 2100여대 규모로 운영된다. 신세계는 또 14,082㎡(4260평) 규모의 대형 이마트 영등포점을 백화점과 동시에 오픈할 예정이다.

신세계 영등포점 개장으로 서부상권은 백화점, 대형마트 3사가 모두 모인 국내 최대의 유통 격전지이자, 반경 3㎞이내 백화점 'Big 3(신세계, 롯데, 현대)'가 동시에 경쟁하는 최초의 상권이 됐다.


신세계측은 영등포점 개장 첫 해인 올해 137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2011년 5500억 원, 2012년 6000억 원의 실적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롯데 영등포점의 매출액이 4500억 원, 현대 목동점이 5200억 원이었다. 2년 안에 롯데 영등포점을 따라잡고, 3년 안에 현대 목동점을 제치겠다는 포부다.

 석강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영등포점 오픈으로 내년 말이면 국내 매출 상위 10개 점포 중 다섯개 점포는 신세계 백화점이 차지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석강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영등포점 오픈으로 내년 말이면 국내 매출 상위 10개 점포 중 다섯개 점포는 신세계 백화점이 차지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최경준
특히 석강 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영등포점 오픈으로 내년 말이면 국내 매출 상위 10개 점포 중 다섯 개 점포는 신세계 백화점이 차지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신세계가 덩치를 키우는 동안 롯데나 현대가 제자리걸음만 할 리 만무하다.

이에 대해 석강 대표는 "매장이 처음 오픈을 하면 보통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보인다"며 "시간이 좀 필요하다. 욕심을 내서 2년 만에 전부 따라잡고 싶지만 (넉넉하게) 3년으로 잡았다"고 여유를 보였다.

석 대표는 또 "고객 니즈(Needs)의 다양성, 원스톱쇼핑, 전 생활 부분 서비스 요구 등의 트렌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신세계만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 지식노하우 등을 자신 있게 펼친다면 서부상권 1번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군선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장도 "롯데 영등포점은 저희가 (리뉴얼을 위해) 영업을 하지 않는 동안 독점을 했기 때문에 매출이 신장됐지만 저희가 오픈을 하면 롯데는 거꾸로 역신장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침체돼 있는 영등포 상권 부활?"

신세계측은 '3년 내 서부상권 1번점'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지만, 최종 개장을 하기까지 적지 않은 난항을 겪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영등포 로터리 일대가 상습교통 체증지역이라는 것이다. 당초 신세계는 지난달 중순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타임스퀘어가 서울시 교통영향평가를 2차례나 통과하지 못하면서 개장도 2차례 지연됐다.

개선안을 다시 제출해 가까스로 평가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교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 자칫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가 교통 체증을 가중시키는 골칫거리로 전락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신세계백화점 개장을 바라보는 주변 상인들의 시선과 우려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김군선 점장은 "초창기에는 상인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영등포 지하상가를 중심으로 '(백화점이) 빨리 오픈하는 것이 상권의 볼륨을 키우는 촉매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강 대표도 "침체돼 있는 영등포 상권을 부활시키고 확대시켜야 한다. (신세계는) 그런 관점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소상공인과 대기업간에 '누구 때문에 누가 죽는다'가 아니라 같이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주변 상인들도 신세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영등포역 앞 지하상가에는 모두 200여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주로 의류, 신발, 가방, 귀금속, 잡화 등을 판매한다.

8일 오후 영등포 지하상가를 찾았다. 신세계 영등포점 지하 진입로 쪽에서 신발을 팔고 있는 박동식(50)씨는 "어차피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과 우리가 파는 물건은 (소비층이) 다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도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전반적인 상권이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성 의류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덕애(50)씨도 "예전에 신세계가 공사한다고 문 닫았을 때 매출이 50%나 줄었다"며 "다시 개장을 하면 지금보다 돈 있는 손님들이 더 많아질 테니, 환영할 일이 아니냐"고 반겼다.

 영등포 지하상가(윗 사진)는 손님이 없어 한적한 모습이지만, 인접해 있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지하1층 입구 매대(아래 사진)에는 브랜드 의류를 싼 값에 사기 위한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다.
영등포 지하상가(윗 사진)는 손님이 없어 한적한 모습이지만, 인접해 있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지하1층 입구 매대(아래 사진)에는 브랜드 의류를 싼 값에 사기 위한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다.최경준

"요즘 백화점은 아울렛... 우리 손님 빼앗기는 것 아냐?"

그러나 장소를 영등포역을 끼고 있는 롯데백화점 쪽으로 옮기자, 상인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역시 여성 의류를 팔고 있는 김아무개(56)씨는 "요즘 백화점은 중국산을 가져다가 너무 싸게 팔아서 꼭 아울렛 같다"며 "소문에 신세계백화점은 명품을 주로 취급한다고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지 모르는 일이고, 만약 이마트에서 싼 옷을 팔면 여기 상인들은 모두 굶어죽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아직 퇴근 시간은 아니었지만, 김씨의 상점을 비롯해 인근 상점들은 손님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김씨의 상점을 나와 20미터 정도 걸으니, 롯데백화점 지하 1층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백화점 입구 앞에 있는 5~6개의 매대에는 수십 명의 손님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매달려 있었다. 각 매대에는 1만원~2만 원대에 판매되는 브랜드 의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롯데백화점 지상 1층 입구도 마찬가지였다. 매대 뒤편 백화점 벽면에는 'OOO 초특가 상품전'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역을 나서는 시민들의 상당수가 매대로 몰려들었다.

롯데백화점과 가까운 곳에서 아동복을 파는 박아무개(45)씨는 "백화점이 백화점다운 물건을 취급해야 하는데, 우리보다 더 싼 물건을 가져다 팔고 있으니, 우리 같은 상인들은 모두 죽으라는 말이냐"며 "신세계나 이마트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이쪽 상인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날 '개시'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등포 지하상가의 한 관계자는 "상인들의 절반은 신세계가 개장을 하면 큰 영향이 없거나 상권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현재 지하상가에 오는 손님들까지 신세계로 빼앗길까봐 걱정하고 있다"면서 "지금으로서는 단정 지을 수 없고,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신세계가 롯데를 겨냥해서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 같다"며 "괜히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롯데백화점 #타임스퀘어 #영등포 지하상가 #영등포 유통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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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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