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외면속에 위협받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대한적십자사 구호병원사업 포기하려나

등록 2009.09.07 14:56수정 2009.09.07 15:46
0
원고료로 응원
적십자병원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여기저기서 '구조조정'한다는 소리가 많이 흘러나오는 터라, 귀에 박히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십자병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아닌 '적십자병원'이라는 단어이다.

올해 초 대한적십자사 총재 직속으로 구성된 '경영합리화추진위원회'는 8월 19일 '적십자병원 경영정상화방안 컨설팅'에 대한 최종 용역보고회를 열었다. 최종보고의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미 공개된 중간보고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중간보고내용의 요지는 "병원의 수익성이 낮아 적자가 누적되고 있으니, 전국적으로 모두 6개인 적십자병원 중, 대구적십자병원(이하 대구병원)은 폐쇄를 하고 서울적십자병원(이하 서울병원)은 100병상 수준으로 축소하며 나머지 4개 병원은 운영주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사실상 적십자사는 병원사업을 모두 포기하겠다는 의향을 드러냈다.

공공병원과 수익성

그동안 적십자병원은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가난하여 몸이 아파도 병원 문턱이 높아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문전박대하지 않고 입원시켜주었으며, 악덕업주로 인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지속적으로 무료진료를 행해왔었다. 장기입원으로 인해 병원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행려환자'조차도 싫은 내색 않고 받아왔다.

실제로 서울병원의 의료급여 수급자 연인원 비중은 총 입원환자 중 47.4%이며, 대구병원의 의료급여 수급자 연인원 비중은 총 입원환자의 68.4%이다. 뿐만 아니라, 종합병원급 평균 본인부담률이 36.2%인데 반해 서울병원의 본인부담률은 18.9%이며, 대구병원의 본인부담률은 20.8%이다. (적십자병원 발전방안,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백근)

본인부담률을 낮추어 병원 이용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주는 이러한 행위는 사회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일이었고, '적십자 정신'에 부합하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병원 운영을 한 결과라면 다른 병원과 달리 수익을 내지 못하고 적자가 난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국제적십자편람을 보면 거의 모든 적십자사가 재정상 문제를 안고 있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인도, 공평, 중립, 독립, 자발적 봉사, 단일, 보편'이라는 그들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료환경을 고려" 했다?


영리법인허용, 민영보험제도, 의료시장개방 등으로 공공의료 축소가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구병원을 폐원하고, 서울병원을 축소하는 등 적십자사 역시 공공의료를 축소하겠다고 하는 것은 '적십자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오히려 이처럼 가난한 이들이 병원 이용을 할 수 없는 환경이 고착화되어 가는 위기 상황에서 대한적십자사가 '적십자 정신'에 걸맞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맞서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십자병원을 공공병원의 위상에 걸맞게 나아갈 수 있도록 대한적십자사 역시 아낌없이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니겠는가?

적십자 회비는 병원에 지원 안하나?

국제적십자연맹 이사회는 '적십자에 대한 기부의 면세'를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기부에 대한 면세 혜택뿐 아니라,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의거해서 정부로부터 국민들의 개인정보인 각 세대주의 주소를 제공받아 회비 지로용지 발송을 보장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산세에 따라 회비 고지금액도 다르다.

2008년 국정감사자료를 보면, 일반회계에서 회비수입, 기부수입, 국고보조금을 합하면 전체 세입의 91.2%에 해당한다. 결국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이 낸 회비형식의 기부금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고보조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한적십자사가 가난한 이들이 갈 병원이 없는 열악한 대한민국 의료 환경을 무시한 채, 수익이 되지 않는 사업을 접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실제 대한적십자사는 2008년 기준으로 볼 때, 병원에 대한 지원이 매우 적었다. 6개 병원에 지원한 총액이 4억7천만원 정도였는데, 이는 전체 병원 수입의 0.54%, 대한적십자사 본·지사(일반회계) 수입의 0.39%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고종때부터 국고가 지원되어왔고, 법적으로도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 분류되어 있는 만큼 적십자병원은 적십자사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팽개쳐진 대구시 가난한 자들의 건강권

대한적십자사의 경영합리화방안 최종보고결과가 외부적으로 공표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구적십자병원은 방치상태에 있다. 전체 입원환자 중 의료급여환자가 68%이다보니, 퇴원해도 갈 곳이 없거나 이미 다른 병원에서 전원되어 온 환자들이 많아 방치상태의 병원임에도 떠나지 않고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 1~2명이 근근이 남아 병원에 남아 있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지만 역부족이며, 정부도 대한적십자사도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한 연구논문(김명찬, 영남대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공공의료기관 내원 행려환자에 관한 연구, 2007)에 의하면 대구 지역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행려환자 등의 내원 시 응급처치만을 마친 뒤 다시 공공의료기관으로 후송하는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구시에서 이러한 기능을 하는 공공의료기관은 대구의료원과 대구적십자병원 두 곳밖에 없다. 2007년 기준 대구시의 인구는 251만명이며,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수는 9만6천명이다. 그런데, 인구는 2004년 253만명에서 지속적으로 줄고 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의 수는 2004년 7만9천명에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적십자병원을 폐원하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수급권자들은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을까? 또한 노숙자, 건강보험료 체납자와 건강보험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 및 건강보험료조차 근근이 내는 저소득층은 또 어디로 가야 할까?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라는 명패를 걸고 가난한 이들에게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서러움을 겪도록 하는 만행을 저질러야 하는 것일까?

'적십자병원'은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다

적십자병원은 1905년 대한제국 칙령 제 47호로 대한적십자사가 창설됨과 동시에 발족되었다. 1907년 대한의원이 적십자병원의 업무를 대행했으며, 1909년 일제에 의해 그 기능이 잠시 마비되었을 뿐, 최근까지 적십자정신을 바탕으로 정부와 함께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한 구료사업에 전념해왔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에게도 정부에게도 어느덧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적십자병원'은 미운오리새끼가 되고 말았다. '대한적십자사'와 '정부'는 서로 '적십자병원'을 내 새끼가 아니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적십자병원은 대한적십자사와 정부의 공동책임하에 태어난 부산물이다.

빈곤한 자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인도주의 정신을 갖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적십자 정신'으로, 정부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비용을 대어' 만들어진 것이 '적십자병원'이었고, 지금 역시도 적십자병원이 필요한 가난한 민중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정부는 핑퐁게임하듯 내 새끼가 아니라며 서로 미루어 적십자병원을 고사시키지 말고, 부디 먹이를 주고 애정을 실어 '백조'로 키워내길 바란다.

적십자병원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사회적 역할이 있다.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구호적 의미에서의 진료활동, 사회적 재난시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활동,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모든 체류자를 위한 의료서비스 제공 등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이 있다. 그와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적십자병원은 훌륭한 '백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누구를 위하여 병원 사업을 하는가?

적십자사는 일부 자발적으로 회원 가입을 해 지로용지를 받는 대신 자동이체로 회비를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임의적인 회원이 되어 회비에 대한 지로용지를 받아 회비를 납부한다. 게다가 국가적・사회적으로도 지원받고 후원 받아 재정을 마련하고 운영한다.

국민들의 피와 땀과 정성으로 재정을 마련하는 적십자사가 돈 안되고 적자난다고 이런 식으로 취약계층 진료를 담당하던 병원을 마음대로 팔아버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이 과연 '적십자 정신'에 부합한다 할 수 있는가?

'적십자 정신'을 중심에 두고 고심했다면, 가난한 이들이 아파도 갈 만한 병원이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적십자병원을 방만한 경영과 관리로 저렇게 고사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을까? 저렇게 저조한 지원으로 방치할 수 있었을까? 수익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폐원하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경영합리화랍시고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이 과히 실망스럽다.

그동안 대한적십자사는 누구를 위한 병원사업을 해온 것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누구를 위해 병원사업을 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 역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회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고지원금 또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전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인 '공공병원운영'을 정부가 못해서 대한적십자사가 하고 있는 만큼 가난한 이들의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낌없이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적십자병원 #대한적십자사 #건강권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적십자회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