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일본 큐슈 남단에 위치한 구마모토현 한 대학에서 열린 안중근 심포지엄.
심규상
100석 남짓한 일본 구마모토학원대학(熊本學園大學) 강의실이 꽉 찼다. 주최 측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 펜을 들고 앉은 사람들은 대학생이 아닌 청장년들과 백발이 성성한 일본 시민들이었다.
강의실 중앙에는 '안중근과 구마모토(熊本)를 생각하는 심포지엄'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들을 강의실로 이끈 이는 안중근 의사였다. 몇몇 일본 시민들이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조선의 국적 1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심포지엄에 일본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5일 오후 1시. 행사시간을 앞두고 강의실 앞쪽으로 낯익은 영정이 등장했다. '명성황후을 생각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카이 도시오(甲斐利雄·80)씨가 준비해온 '명성황후'의 영정이었다. 카이씨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대부분이 구마모토(熊本) 사람인 것을 알고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15년 째 시해자들의 뒤를 쫓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안중근 심포지엄'에 명성황후 영정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카이씨는 "안중근 의사가 적시한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목 중 그 첫 번째로 '한국의 황후를 시해한 죄'를 꼽은 것을 알고 명성황후 영정과 시해에 가담한 구마모토 출신 사람들의 행적을 정리해 왔다"고 말했다. 강의실 뒷 편에는 그가 정리해온 '명성황후 암살 관계자 일람표'가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