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스타지리멸렬한 국경통과 때문에 트럭 아래 그물침대를 쳐 놓고 자는 운전사들.
문종성
근거 없이 가장 사기꾼 인상을 풍기는 환전상이 내게로 달려든다. 그는 이 얼뜬 청년이 곧 국경을 나가게 되었으니 일단 낚아보자는 강태공의 심정으로 다소 과도한 환율을 적용시킨다. 달러도 아니고, 유로도 아닌 '듣보잡' 나라들의 환전이라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오 마이 프렌드! 너의 어려움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 건가, 지금 이대로 국경을 넘어가면 더 높은 환율이 적용되지 않겠는가'하며 환전상은 친절과 협박의 선을 긴장도 없이 넘나든다.
더위를 우습게 여긴 죄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동공이 풀린 나는 결국 넉다운이 된다. 반쯤 정신줄을 놓은 난 터덜터덜 국경검문소 사무실에 들어간다. 국경 관리자는 내 만신창이 모습을 보더니 당황했는지 연신 시원한 물을 가져다준다. 정수기까지 예닐곱 걸음이면 갈 거리라도 지금 내 몸은 나사 빠진 자리에 뻘건 녹으로 굳어진 폐기물 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