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내정 소감을 밝히기 위해 교수연구실을 나서고 있다.
유성호
의문이었다. 심대평 의원의 총리 기용 실패를 놓고, 이명박(MB) 대통령이 왜 저럴까 하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MB는 강소국 연방제 때문에 협상이 깨졌다고 했다. 이회창 선진당 총재는 세종도시법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것이 됐든, 누구 책임이든 어쨌든 충청을 포용하는 데 일단 실패한 기획이었다. 따라서 MB가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언급했다. 왜 저럴까.
MB는 왜 이회창을 물 먹였을까주지하듯이, MB는 박근혜 전 대표를 싫어한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누려도 그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기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 전 대표의 지지기반은 영남과 충청이다. 사실 영남에서 MB는 수도권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진정한 영남후보라는 것이다. 충청은 고(故) 육영수 여사 때문에, 그리고 대표 시절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처리해 준 덕분에 박 전 대표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MB는 이회창 총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뭐 때문에?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MB가 정운찬 전 총장을 총리로 기용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풀렸다. MB가 논란을 계속한 것은 정 전 총장을 등장시키기 위한 터 닦기 차원이었다. 충청 대표성을 놓고 경합해야 하는 이 총재를 흠집 내고, 그 틈에 정 전 총장을 충청의 새로운 대표주자로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자유선진당은 분열되었고, 이 총재의 리더십은 적지 않게 훼손당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성공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MB로서는 그 실익이 쏠쏠할 것이다. 현 정권 출범부터 지금까지 '삐딱한' 자세를 보였던 충청 민심에 어느 정도 소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승세인 MB 지지율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충청이 호응하고, 중도층의 편입이 늘어난다면 출범 이후 최고의 지지율을 갱신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최고의 MB 지지율은 취임초의 48%였다. 사실상 독주하는 박 전 대표를 견제하는 효과도 만만치 않은 게 MB로선 큰 이득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MB 입장에서 보면, 정운찬이 정치적 생존을 위해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 최악이다. 이런 싸움은 개인적 성정의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평소의 생각이나 가치 지향성을 보면, MB와 정운찬은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또 박근혜가 정운찬의 싹을 자르기 위해 예의 친이·친박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도 부담이다. 예상되는 이 총재의 비협조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제로섬 관계인 박근혜, 이회창, 정운찬 3인의 이해를 조화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 전 총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번 선택은 위험한 모험이다. 흔히 정운찬 하면 '꽃가마만 타려 한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과연 총리직이 꽃가마인지부터 회의가 든다. 노무현 정부의 책임총리와 같은 힘과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한승수 총리의 롤 모델이 여권 내부의 권력게임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면 정 전 총장의 운신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뭔가 해보려 하면 당장 대통령 권력과 부딪힐 것이고, 얼굴마담으로 만족하면 그는 불임 지도자로 전락할 것이다. 총리를 지내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경우는 한국에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