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우리 역사는 소위 식민지사관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종찬
왜곡한 역사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자료 불사르다"그들(일제)은 조선을 식민지화한 후에 1915년 중추원 편집과 1921년 12월 4일 훈령을 공포하여 '조선사편찬위원회', 그리고 1925년 6월 칙령을 공포하여 '조선사편수회'를 만듭니다... 이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이래 가장 큰 폐단입니다. 여기에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이 고문을 맡았고, 위원장은 정무총감이 겸임했습니다"-75~76쪽효림 스님은 "이 모임에 저 유명한 사학자 이능화와 조선의 천재라고 하는 최남선 등이 위원으로 활약하였고, 식민사학의 대명사라고 할 이병도도 맹활약을 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여기에서 "우리 역사가 필연적으로 일제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열등한 민족이고 그러한 역사를 가졌다"고 썼다.
어디 그뿐인가.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왜곡한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요한 역사자료를 수집하여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는 것이다. 효림 스님은 "실로 놀라운 악행"이라며 "그런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8.15 광복 이후에도 이 땅에서 주류로 활약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라는 것. 그렇다면 효림 스님이 말하는 이병도는 어떤 인물일까. 이병도는 해방 뒤 한국 역사학계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상징이 된다. 어떻게?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고, 문교부 장관,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각종 역사학계를 한 손에 틀어쥐고 제멋대로 주물렀기 때문이다.
효림 스님은 "그의 손자들까지 현재 서울대학교 총장은 물론이고, 각종 기관장을 하고 있다 "며 "그들 손자들 또한 지금까지도 식민사관을 포기하지 않고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 그 학설이 역사학계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데 우리 역사가 어찌 바로 설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나라 안팎에서 제멋대로 구부러진 우리 역사와 민족성 바로 세워야임효림 스님이 지은 <민족의 길>은 우리 역사가 나라 안팎에서 어떻게 왜곡되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있다. 왜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이 남북통일을 껄끄러워하는지, 중국이 왜 동북아공정 운운하는지, 일본이 왜 독도 운운하며 역사교과서까지 왜곡시키는 지, 북한이 왜 자주권을 주장하는지, 이 책 한 권이면 훤하게 꿰뚫을 수 있다.
이 책은 자그마하고 얇은 책이다. 하지만 시가 짧다고 해서 그 어떤 사실을 꼬집어내지 못하며, 소설이 길다고 해서 그 어떤 사실을 낱낱이 밝혀주던가. 문제는 글을 쓰는 이가 우리 역사와 민족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그 눈썰미에 따라 우리 역사와 민족성이 구부려지기도 하도 구부려진 역사와 민족성이 바로 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이 사리처럼 소중하게 빛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임효림 스님은 1968년 승려가 된 후 전국 선원에서 운수납자(스승을 찾아 도를 묻기 위하여 돌아다니는 스님)로 수행했으며, 2002년 <유심> 봄 호에 시 '한 그루 나무올시다' 로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는 나무> <꽃향기에 취하여>가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 곳에 스님이 있었네>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가 있다.
생활불교 이야기로는 <사십구재란 무엇인가> <행복으로 가는 기도> <자유로 가는 길 도(道)> 등이 있다. 그동안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불교신문사> 사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등을 맡았으며, 지금은 성남 봉국사 주지, 만해마을 사무총장 등을 맡고 있다. 전태일 문학상 특별상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