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제작한 FGM 포스터두려움에 울고 있는 소녀와 아래로 내려긋는 피 묻은 면도날이 인상적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할례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포경수술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남성의 할례, 즉 포경수술은 남성 음경의 표피 전부 또는 일부를 자르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여성할례는 의료행위와 전혀 상관없는 이유 또는 문화적 관습 때문에 여성의 생식기 일부를 절제해 손상을 입히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생식기의 일부를 절제한다는 면에서 일면 비슷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전혀 다른 근원을 가지고 있다.
할례는 유대인들과 무슬림에게 중요한 전통의식이다. 유대인들이 사내아이를 낳은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나 에티오피아 같은 지역에서도 포경수술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도 성인식의 개념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통 현대의 포경수술은 종교적 의미, 제례적 의미보다는 대체로 개인위생과 청결 관리라는 측면에 입각하여 시행되고 있다.
반면, 여성 할례는 주로 0~14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데, 전통관습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출생 직후나 혼인 직전, 첫 출산 전에 주로 행해진다. 마을의 연장자나 할머니들에 의해 칼이나 유리조각 등으로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엄청난 고통과 쇼크, 심리적 손상을 입으며, 감염과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할례시술시의 상처는 궤양이나 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에이즈 감염의 위험도 높게 된다. 여성할례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모두 손상시키는 인권 침해로서 가장 극단적인 성차별인 것이다.
즉, 남성의 할례는 선민사상, 성인식, 통과의례, 위생과 청결의 개념을 바탕으로 실시되지만, 여성의 할례는 여성혐오, 성착취, 성차별, 불결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성 할례와 싸우는 여인 - 수퍼모델 와리스 디리
한비야씨와 다히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나는 여인이 한 명 있다. 2004년 '올해의 여성' 사회(인권)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이다.
그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열세살 때, 낙타 몇 마리에 팔려 나이 든 노인과 결혼해야 하는 현실이 싫어 집을 뛰쳐나왔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이 소녀는 우여곡절 끝에 말도 통하지 않는 런던에까지 흘러 들어가 가정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를 통해 훗날 패션계의 톱모델로 우뚝 서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하나 더 숨겨져 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아픈 상처를 지니고 살아왔다. 그녀 자신이 여성할례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숨기고만 싶을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이 문제와 싸워나갔다. 처음에는 현실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성할례를 세상에 알림으로 해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였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은 것이었다.
이후로 그녀는 유엔의 특별 인권 대사로 활동하며 더 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녀의 이름 '와리스'는 '사막의 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처럼 척박한 여성할례의 참상 속에서 향기를 발하고 있다.
그들은 왜 여성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일까? 와리스 디리가 태어난 소말리아 속담에 "여자는 악마가 놓은 덫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여자의 다리 사이에는 나쁜 것이 있다고 믿었다. 여성의 성기는 처음부터 불결하고 음탕하니 할례를 통해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해야 하는 것이었다. 음핵과 소음순, 그리고 대부분의 대음순이 잘려 나가며 남은 부분은 꿰매어 봉해진다.
여성할례는 주로 0~14세의 어린 나이에 이루어지며 마을의 산파나 늙은 여성에 의해 마취없이 비위생적으로 시행된다. 노파는 면도칼, 칼, 가위, 유리조각, 날카로운 돌 등을 사용하여 수술을 통해 소변과 생리가 나오도록 성냥개비가 들어갈 만큼의 작은 구멍만 남겨놓는다. 수술을 마치면 구멍이 작게 남도록 하기 위해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상처가 매끈하고 깨끗하게 아물도록 똑바로 누워 자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금기인 것이다.
여성할례로 인해 과다출혈, 쇼크, 파상풍, 패혈증 등의 각종 후유증으로 많은 소녀들이 목숨을 잃는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불임, 생리통, 불감증, 우울증을 앓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감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이 순결한 몸으로 시집갈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에서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은 불결하고 방탕한 매춘부처럼 여겨진다. 여성할례는 성경험이 없는 숫처녀라는 증표이다. 그 땅의 엄마들은 여성할례 의식이 딸을 순결한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라 믿었다. 물론 엄마들에게는 처음부터 이 여성할례 의식에 관해 아무런 의사결정권이 없었다. 엄마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그 엄마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딸에게 동일하게 한 것뿐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들 역시 수천년을 전수받은 피해자일 따름이다.
할례를 받은 이 소녀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은 신부의 봉합된 음부를 강제로 벌린다. 만약 이 구멍이 너무 작다면 칼로 잘라 벌리기도 한다. 결국, 여성할례는 순결한 처녀로 키우기 위해 늙은 여성이 칼로 구멍을 막고, 다시 남편의 칼로 그것을 열어 놓는다는 엽기적인 의식이었던 셈이다.
관습의 정비와 동시에 회복되어야 할 의식들아프리카에서만 4천년 이상 진행되었다는 여성 성기 절제 행위는 지금껏 관습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일부 지역 관습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성할례를 더 깊이 들어가보면 여성들에게 쾌락이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열한 믿음이 깔려있다.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가 빚어낸 이러한 관습은, 여성들에게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수동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고,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든다. 여성성을 앗아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력감을 갖게 한다. 또한, 여성할례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는 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여성을 사회적, 경제적 종속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인 가학으로 여성을 소유할 수 있을까? 여성의 충절은 여성 성기를 도려내고 봉합하는 야만적인 관습을 통해 얻어질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성숙한 사랑과 믿음으로 얻어 가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불구로 만들어 자신의 곁에 잡아두겠다는 것만큼 잔혹한 상상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여성할례를 통해 이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 관습이나 전통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근절해 나가기 위해 올바른 성의식에 관한 교육과 계몽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여성할례를 방지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