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겸면천 둔치의 목화밭.
이돈삼
'목화'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문익점과 붓대롱이다. 고려시대 원나라에 갔던 문익점이 붓대롱 속에 목화씨를 숨겨가지고 들여왔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이렇게 들여와 재배에 성공, 온 나라에 퍼뜨린 것도 그의 공력이다.
이후 목화는 오랜 세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옷감의 귀한 소재가 돼 의식주의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때로는 시골집의 정원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꽃이 진 다음 열리는 다래는 빼놓을 수 없는 군것질거리였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친구들과 따먹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한 다래의 맛은 지금까지도 기억 저편에 생생히 남아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짓게 한다.
또 따사로운 햇살에 쩍 벌어진 하얀 솜꽃은 갈대나 단풍에 버금가는 가을의 서정을 담아냈다. 이 풍경은 옛날 우리네 농촌들녘의 일상이었다. 그 시절 목화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도 잇따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
그러나 목화는 1970년대부터 수입 원면과 화학섬유에 밀려 재배면적이 줄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엔 목화밭을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지면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