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 주택 대신 중대형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정진영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일찍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빈 자리를 찾아 다니는 학생들을 가리켜 '메뚜기족'이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자리를 맡은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앉았다가, 임자가 나타나면 비켜주는 귀찮은 일이지요. 제 친구 중에는 이사도 메뚜기형으로 하는 집이 있습니다. 순전히 일 때문입니다.
친구 P가 다니는 회사는 강남과 강서 두 곳에 지점이 있습니다.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순환 근무를 해야 합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부정의 소지가 있기도 하고, 강남 근무자가 아이들 교육면에서 일종의 특혜를 누리기 때문에 공평한 인사발령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인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순환근무입니다.
친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느 지점에서 일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더니, 임신을 한 뒤로 대치동에 있는 구립어린이집 대기자 수를 확인하더군요. 막상 복직이 강서지점으로 결정되자 이사 갈 집을 찾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값이 오른 것도 문제였지만, 강남에서 강서로 이사하는 경우라 돈보다는 빈 집이 문제였습니다. 회사 근처에,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이 멀지 않은 집을 구하려니 쉽지 않았던 거지요.
며칠 동안 퇴근 후에 세 식구가 발품을 판 끝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괜찮은 집을 찾았습니다. 친구 남편은 그나마 강남에서 햇빛도 거의 안 드는 방 두 개에 33제곱미터(열 평)짜리 좁은 집에서 생활하다가, 강서로 옮기니 집이 조금 넓어지고 햇빛이 잘 들어서 오히려 애를 위해서는 더 잘됐다고 말했답니다.
친구P는 강서에서 몇 개월을 보내고 난 뒤, 이번에는 강남으로 옮길 때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1년 몇 개월 후에는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 강남 쪽으로 근무지가 바뀌는 것이 환영할 일이지만, 전세값이 이미 수직 상승한 터라 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을 미리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 오른 집값이 다음 번 인사이동에서 친구에게 전세 보증금 폭탄이 될 것입니다.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정기적으로 강남과 강서를 오가며 일하는 친구가 주거안정과는 먼 생활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집 문제는 교육문제, 직장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출근길과 아이들 양육까지 고려하면 집을 구하고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가진 사람들의 편리와 탐욕에 덜 가진 사람들이 몸도 마음도 고달파지는 시절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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