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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랑' '땡그랑'
워낭소리다. 워낭은 소나 말의 귀에서 턱 밑까지 늘여놓은 방울이나 쇠고리로 뱀 등의 동물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달아놓았다고 하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소도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그립고 애틋한 워낭소리, 낙안읍성에 가면 들을 수 있을까?
지난 2009년 1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독립영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한적한 시골풍경을 잔잔한 영상미로 표현해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팔순의 농부와 마흔 살 된 소가 엮어나가는 이야기가 가슴 짠한 눈물을 전해줬기 때문이다.
얕게 감상한 이들은 시골의 정취에, 깊게 바라본 사람들은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인간과 동물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 초점을 맞췄으리라 생각하지만 둘 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집합을 이뤘으리라 짐작한다.
이런 애틋함을 그저 영화 속에서나 간접적으로 느껴봐야만 하는 이들이 그 '그리움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있다. 바로 순천시에 있는 낙안읍성으로 도시 속에서 옛 시골 정취를 찾아볼 수 있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낙안읍성에는 소가 몇 마리 있을까? 송아지 두 마리를 포함해 모두 여섯 마리가 있다. 그럼 모두 워낭을 달고 있을까? 모두 달고 있지 않다. 그중 한 마리가 가끔 주말에 시연을 위해 워낭을 달지만 다른 소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워낭을 달아본 적이 없다.
낙안읍성에 소도둑이 있을 리 없고 뱀이나 동물들을 쫓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를 먹이기 위해 산으로 들로 나가는 일도 없기에 워낭을 달아야 할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그저 목에는 줄만 매달고 있다.
워낭소리 들려야 낙안읍성 본래의 모습이라는 지적
소가 논밭을 갈고 짐을 지던 옛날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어릴 때 "소 먹이러 산이나 들로 나가서 방목해 놓고 냇가에서 멱을 감다 보면 해가 저물고 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워낭이 있어 요긴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워낭은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그 소리가 모두 달라 캄캄한 밤중에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들리는 워낭소리만으로도 어떤 소리가 뉘 집 소의 워낭소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일 뿐이다. 농사를 소로 짓지 않기에 소가 집 밖으로 나들이 가는 일도 없고 사료 등 먹을 것도 풍부해 산이나 들로 소 먹이러 간다는 얘기도 사라졌다. 하루 종일 목을 매단 채 외양간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워낭소리가 그립고 들판에서 뛰노는 소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 낙안읍성을 찾아와도 그런 모습은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낙안읍성 밖에 초지가 널려 있음에도 그곳에 소나 양이나 닭 등을 풀어 놓으면 문제가 불거진다.
낙안읍성 주변 초지에 소가 함께 있는 풍경, 쇠똥도 풀 속에서 발견되는 낙안읍성, 자동차 소리 대신 워낭소리가 들리는 낙안읍성이면 어떨까, 여러 가지 관리상 읍성 내부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읍성 밖의 초지에서는 한번쯤 이런 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어쩌면 주민들의 이심전심일 것이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
덧붙이는 글 | 예고: [09-033] 여름 휴가 끝나니 오붓한 이미대
남도TV
2009.08.27 14:5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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