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들를 겸 조선족이 운영하는 고구려휴게소에서 인삼, 산나물, 꿀 등을 눈요기 했다. 시원한 지하수로 손을 씻었더니 금방 피로가 풀린다. 한국의 식당에서 일해 벌어온 돈으로 차린 휴게소라 주인이 우리나라 실정을 잘 안다.
백두산 아래 동네인 송강하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일행들과 하루 종일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하며 백두산 입구로 향했다. 백두산 여행은 천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준해 전문트레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북파와 완만한 고산지대라 일반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서파로 코스가 나뉜다. 우리 일행은 서파 코스로 천지에 올라간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화산활동을 하던 사화산으로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하고 연중 눈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 일에 달한다. 백두산은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도 많다.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의 백두산은 한국 사람들만 부르는 이름일 뿐, 이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말이 아니다. 정상 부근이 눈 때문에 희게 보이고 줄기가 길게 이어진 산이라서 중국이나 북한 사람들은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침엽수림이 울창한 1000m 높이의 백두산 입구 매표소도 장백산이라고 써 있다. 5호경계비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베테랑 운전자들만 셔틀버스를 운행하는지 무척 빠른 속도로 올라 하늘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다. 굽이를 돌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천지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다. 1500m 이상에는 이끼만 있는데 이곳에 고산토끼와 쥐가 산다. 해발 1800~2400m의 고산화원은 6월에야 봄이 찾아와 1800여 종의 들꽃으로 야생화 천국을 만든다. 고산화원은 완만한 구릉지라 가지각색의 야생화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백두산은 흡연금지 구역이다. 꽃 한 송이도 꺾을 수 없다. 태극기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비디오 촬영도 제한한다. 숲에서 소변을 봐도 돈을 요구한다.
우천 시에는 번개 때문에 우산대신 우비를 입는 것이 좋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모자 날아가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백두산 정상 주변의 장사꾼들은 중국 정부에 세금을 많이 낸다. 물건 값이 비싸고 토비(산적)에 비유할 만큼 상술이 고래심줄같이 질기다.
천지의 날씨는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여자의 마음에 비유한다. 누가 지어냈는지 백두산 정상에 올랐지만 천지를 못보고 간 사람이 천지라 천지라고 한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5호 경계비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1년에 하루밖에 없는 날씨처럼 맑고 파란 하늘이라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맑은 날씨를 보자 평소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만 온 것 같다며 가이드가 더 좋아한다. 아이들 마냥 가이드를 졸라 이곳에서 2시간을 머물기로 했다.
천지 오르는 길에는 나무가 없다. 날씨가 좋아 땡볕이지만 천지만 제대로 보면 된다. 높이에 비해 걷기 편한 1236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며 주변의 풍경과 야생화를 감상했다. 보이는 풍경이 모두가 장관이다. 날씨가 좋아 신이 난 가마꾼들도 "가마타요. 힘들어요. 싸요"를 크게 외친다.
오르내리는 관광객들 사이로 2470m 높이에 있는 5호경계비와 총을 들고 서 있는 중국군 병사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표석 5호경계비의 양면에 '中國5'와 '조선5'가 써 있다. 이 표석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비이다. 백두산 천지의 2/5는 중국이, 3/5은 북한이 관할하고 있는데 북쪽 땅은 왠지 황량해 보인다.
와! 천지다. 불규칙한 기후, 거센 바람, 폭풍우로 아름다운 광경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천지가 하늘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 눈앞에, 내 발 아래 천지가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놓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가슴 벅찬 감동을 몇 번이나 경험했던가? 천지의 감격적인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백두산 풍경 중 최고로 꼽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칼데라호)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 위치한다. 11월에 얼어붙었다 6월이 되어야 녹는데 식수로 사용할 만큼 수질이 깨끗하다. 해발 2200m, 전체 면적 10㎢, 호수 주위 길이 13㎞, 평균수심 204m인 천지가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백두산의 최고봉은 2744m의 장군봉이다. 장군봉을 필두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천문봉(2650m)이 한눈에 들어온다.
5호경계비와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맥주를 두 캔이나 마셨다. 똑같은 장면인데 보고 있을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난시라 쉽게 피로를 느끼는 눈이건만 천지를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도 피곤하지 않다. 감동의 물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어느새 1시간이 지나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상술이 고래심줄이라더니 중국인 사진사가 4만원에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12장을 CD에 담아주겠다며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날씨가 좋아 값도 깎아주겠다고 유혹하는데 사진은 잘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