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2월, 시드니대학교에서 열린 '고은 문학의 밤
윤여문
잘 알려진 대로 고은 시인과 백낙청 교수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인연을 이어온 대표적인 문화계 인사들이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어려움도 함께 겪었고 6.15 남북공동선언 등의 통일문제에서도 공동보조를 맞춰왔다.
1992년에 호주를 방문한 고은 시인한테 반해서 해마다 '고은 시 낭송회'를 여는 호주 시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주관하는 마가레트 스트리톤(호주국영 abc-TV 문화프로그램 진행자)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고은 시인에게 전하는 통화를 18일 했다.
스트리톤은 생전에 "귀신들린 것 같은 시낭송과 통일을 열망하는 그의 시편들에 크게 감명 받아서 17년째 '고은 시 낭송회' 주관한다"고 말했다. 스트리톤은 호주공영 SBS-TV '북 쇼(Book Show)'에 출연한 고은 시인을 40분 동안 직접 인터뷰했다.
고은 시인과 통화를 끝낸 다음 곧바로 백낙청 교수와 통화했다. 그가 8월 25일 호주국립대(ANU)에서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관해서 공개강좌를 가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호주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여러 차례 참가한 바 있는 백낙청 교수는 오랫동안 천착해온 '분단체제 극복'에 연관 지어서 자신의 통일철학을 밝힐 예정이다.
그런데 두 사람과 통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커다란 충격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DJ와의 개인적 인연들이 떠올랐다. 밤늦도록 김대중, 고은, 백낙청의 그동안 발자취를 곱씹으면서 세 분의 공동관심사인 '분단체제 극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최초의 로고송 추억
"윤군이라고 했나요? 지금부터는 윤 동지라고 부르겠어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대전 유성호텔에서의 기억이다. 전주 신역의 유세를 마치고 유성에서 1박한 다음 부산으로 가서 수영만 유세를 앞둔 시점이었다. 유세장에 청중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 30만, 50만은 보통이고 100만 명도 모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기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단독으로 만났다.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마치 거대한 산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지라는 호칭 하나로 바짝 긴장한 마음을 풀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말이 대화지 기자는 다소곳이 앉아 그냥 듣기만 했다. 바로 그날 낮에 전주 신역 유세장에서 방송된 김대중 후보 로고송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주셨던 것이다. 그 로고송은 그날 처음으로 소개됐는데 김영삼 후보의 로고송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치사상 최초의 선거용 로고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