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건립반대 추진위원회가 처음 집회를 연 이날, 현장에는 단 한 명의 군 의원과 군수 출마자들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지역 주민들로부터 공분을 자아냈다.
'표심'을 먹고 사는 군 의원들과 내년 6·2 지방선거 군수 출마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전에 이 같은 내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도 이들은 '약한 자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다.
게다가 군의회의 경우 집행부인 함양군으로부터 도축장건립 사업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고, 의회도 최근에 이를 알았다는 주장들이 나온 상태라서 왜 참석하지 않았지 하는 의구심을 부추겼다. 아무래도 도축장 사업을 찬성하는 쪽도 있을 테고, 또 반대도 있을 테니 아예 참가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추진위원회의 주장대로 "군의회가 도축장이 추진되는 것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다"면 민의를 대변하는 군 의회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함양군의회 A의원은 "기존에 있던 도축장은 함양 하림의 공원화사업으로 도축장이전이 불가피했다"며 "작년 가을쯤 하림에 있던 도축장시설은 냄새도 많이 나 옮기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로 옮기는지 장소는 보고 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집행부는 당시 도축장 건립에 대해 구두로만 보고했다"며 "군과 도축장업체의 투자협약 체결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곤혹스러워했다.
A의원은 "빠른 시일 내에 의회에서도 현장을 방문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절차상 문제는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집행부가 의회를 무시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즉답을 회피했다. 군은 올해 8월4일 의회간담회를 통해 의회에 정식으로 보고했다.
함양군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도축장은 노후화된 비위생적·재래식 도축시설로 시설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함양 하림의 공원화사업으로 도축장 이전은 불가피한 상태다.
또 도축장이 들어서면 위생적이고 현대화된 도축․가공시설 확충으로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 공급할 수 있어 국민건강 보호 및 농가 소득에도 증대할 수 있고, 축산 관련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남 서북부권 유통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은 소 도축시설이 없어 관내 축산 농가들의 불편 및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고, 지역사회에 상시고용 효과도 100여명에 세수도 연간 7억여 원이 기대됨에 따라 도축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도축장은 지난 6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도축장 통폐합사업을 승인 받은 상태로 내년 1월부터 도축장 건립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초 이 사업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소규모 도축장 통폐합사업의 일환으로 경남이 축산물 유통처리구조가 취약해 도축장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축산발전기금을 지원하면서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함양군이 적극적으로 도축장을 유치했고, 농림부에서는 도축장 예정부지 매입 및 관련 법령 검토를 거쳐 지난 6월 12일 (주)하이미트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
축산발전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소규모 도축장이 통폐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초 피앤엠영농조합법인(함양)과 명목축산(하동), 부광산업(양산) 등 3개 업체가 (주)하이마트로 통폐합하기로 했다가 하동에 있는 명목축산이 빠지고 2개 업체만 통폐합하는 것으로 사업이 변경됐다.
하지만 양산에 있는 부광산업마저 오는 19일 4차 경매에 나서게 되어 사실상 통폐합의 의미는 없어진 셈이다. 추진위윈회 측에서는 이날 "축산위생처리협회 선정위원회에서는 부광산업이 경매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검토를 지시하라고 유보결정을 내려 아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농림부 안전위생과 관계자는 "부광산업의 경매여부와 사업 재선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며 "축산발전기금 사업선정 시 기본요건을 갖추었고, 부광산업의 경우도 구조조정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주민 간 갈등은 막아야 한다
지리산 골짝에 위치해 있는 경남 함양군이 꽤 시끄럽다. 지난 2000년 국민적 합의에 의해 중단됐던 지리산 댐을 함양 천사령 군수가 다시 들고 나오면서 '지리산 댐' 논란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도축장건립반대 추진위원회 시위가 있던 이날도 '지리산 댐 반대 릴레이 1인 시위'가 함양군청 정문 앞에서 오전 8시부터 9시3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열렸다. 1인 릴레이 시위와 수몰예정지 주민행동은 17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열리게 되며 함양시민연대 임병택 운영위원장이 첫날 1인 릴레이 시위자로 나섰다.
이들은 "지리산 댐은 2002년부터 시작된 함양 군수의 대정부 청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1인 시위 이유에 대해 밝혔다.
뿐만이 아니다. 2003년 12월 24일 경남도청에서 장인태 도지사 권한대행과 천사령 함양군수, 민간투자업체로 선정된 (주)도시와 사람 하창식 대표이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다곡리조트 개발사업 민간투자 협약을 체결하면서 '골프장'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주민들은 "군이 다곡리조트에 함양군의 운명이 달렸다느니, 이 사업을 반대하는 자는 함양을 떠나야 한다느니 하며 행정력을 휘두르며, 개발예정지역 토지 주인을 찾아다니며 비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토지매수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며 분개했다.
그리고 6년이 흘러가는 지금에도 담당 공무원들은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내기 보다는 시위에 참가하면 안 된다"고 전화로 종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함양군의 현실이다.
대형 개발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민들의 의견수렴이다. 그러나 함양군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 주민들에게 이익이나 부작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반대와 또 다른 반대가 되풀이 되고 있다.
도축장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나란히 놓여 있는 도축장 찬성 현수막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주민들 간의 화합과 단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축장반대 추진위원회 연대사로 나선 함양민중연대 김현태 조직국장은 이점을 분명히 밝혔다. "도축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 한 곳은 도축장이 들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민들을 철저히 무시당하고 소외되며, 밀실에서 모든 행정이 결정되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자치단체장은 국민을 힘이 아니라 말로 설득하고, 국민에게서 나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소통 과정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고 유지시켜나간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때다. 주민과 행정당국의 지루한 싸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지.
2009.08.18 09:4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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