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한홍구 교수, 김영수 교수 등 7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최재혁
과거사청산을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권의 회복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견해도 있었다. 의문사한 고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준 경희대 법대 교수는 "의문사의 문제는 인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생명권에 대한 문제"라면서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밝혀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이런 국가의 의무는 시간이 흐른다고 줄어들지 않는다"며 "계속적인 관리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문사를 규명하는 기구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최종길 교수는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 전기 고문으로 숨졌고,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민주화 운동가로 명예가 회복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0년 10월 17일에 출범해 2004년 6월 30일까지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법이 제정되기까지 422일간의 국회 앞 농성 같은 유가족들의 투쟁이 있었다. 위원회는 1981년 삼청교육대에서 사망한 전정배, 인민혁명당 사건 등 의문사의 실체를 밝힌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재야 지도자 장준하, 중앙대 총학생회 회장 이내창 의문사 사건 등 30여건을 '조사불능'으로 결정했다. 제한된 조사 권한과 활동 기간 만료가 이유였다.
과거사청산 공은 다시 시민사회로... 대중과의 소통 고민해야김성희 이내창열사추모사업회 운영위원은 위원회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운영위원은 "위원회의 운영주체들의 내부 갈등으로 효율적인 운영에 실패했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역시 이내창 사건에 대해 진정을 낸 지 4년이 다 돼 가지만 조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 국정원과거사위원회 위원이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일상적 보고 쪼가리 외에는 이내창 열사에 대한 자료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유가족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제는 국가가 중심이 돼서 과거사를 규명하는 단계는 지나 공은 다시 시민사회로 넘어왔다"며 "대중에게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알리고 소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앞서 군대에서 의문사 한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씨가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의문의 죽음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태에서 후손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냐"며 "좋은 세상 만들어서 후손은 우리와 같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