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남소연
'인동초'(忍冬草)는 이름처럼 겨울을 이겨내는 꽃이다. 이 풀은 엄동설한에도 잎과 줄기가 얼어 죽지 않고 견디다가 이듬해 여름이 되면 화사한 꽃을 피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에게 인동초라는 별호가 붙은 것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혹독한 겨울을 여러 차례나 겪었지만 그때마다 마치 인동초처럼 살아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겨울을 너끈히 견딘다는 인동초도 여름 병마(病魔)에는 무력한 것일까? 이제 낼모레면 말복이다. 7월 13일에 중환자실에 실려 간 DJ는 근 한 달째 삼복염천의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뜨거운 여름날, 그의 수족이 차갑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이 뜨개질로 벙어리 장갑을 짜서 감쌌다는 애처로운 소식이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대하고 "내 몸의 반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고 했던 그의 말이 정녕 사실이었나 보다. 85세 고령의 노인이 반 남은 몸으로 이겨내기에는 하늘이 너무 뜨겁고 대기가 심상치 않게 어수선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일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의료진에게 "기적도 있다.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병문안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말이 야속하게 들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DJ의 소생은 이제 '기적'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혹여 그가 뭔가 결정적인 소식을 듣고 한 말일는지 몰라 불안해진다.
사태가 비상한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급거 병문안을 간 것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역시 병문안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참칭(僭稱)했던 사람들 아닌가.
김대중의 상실은 우리 민족의 크나큰 불행60여 년 전 해방정국의 여름, 우리는 두 지도자를 잃었다. 몽양 여운형이 암살된 것은 1947년 여름이었고 이어 백범 김구는 1949년 여름에 암살되었다. 몽양과 백범은 둘 다 남북 합작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로서 각각 극우 인물 한지근, 안두희의 만행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두 사람의 상실로 우리 민족이 입은 손실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인물을 잃은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겪었으며 남북 분단 체제는 더욱 고착되었다. 물론 몽양이나 백범만한 민족 전향적인 인물은 반세기 동안 나오지 않았다. 이후 등장한 죽산 조봉암 역시 이승만 정권의 사법 살인에 희생되고 말았다. 이처럼 대북포용과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수치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반세기 만에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민족 전향적인 지도자를 만났다. 하지만 올 들어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두 지도자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마저 세상을 뜬다면 민족 문제를 풀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카터나 클린턴의 특사 방문에서 보았듯이 김정일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대북특사로서 적임자였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부재는 남북문제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인적 수단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화 투쟁의 제1인자 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