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집, 여자=혼수'라는 공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우성
이처럼 내 결혼에 대한 주변의 과도한 관심은 정작 별 생각 없는 나에게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굉장히 구질구질하게 보는 듯한 시선과 동정의 뉘앙스를 흠씬 풍긴 달까? 나처럼 웨딩 촬영 전날에도 오뎅, 순대, 떡볶이를 잡숫고 주무시는 무신경한 신부가 아니었다면 아마 굉장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정말 막상 실행해 보니 결혼준비 기간 동안 신랑, 신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주변의 '오지라퍼'들이었다. 끊임없는 비교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잣대를 기준으로 조금만 모자라다 싶으면 온갖 참견과 "남들은 이랬다더라~"라는 식의 염장질. "이 정도는 해줘야 대접받는다"라는 충고 아닌 충고까지. 니들이 데리고 살게 아니면 "그 주둥이 닥치라"고 말해주고 싶었달까?
문제가 이렇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은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신혼집을 마련할 때에도 조금이라도 큰 평수의 아파트로 가야 한다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남들 안줏거리가 되는 꼴은 보여주기 싫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평생 두고두고 누군가 결혼만 할라치면 "내가 아는 애는 글쎄…"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불쌍한 결혼의 대표적인 예로 우려먹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 이러한 오지라퍼들만 제거되어 준다면 집 때문에 결혼 못한다는 답변 따위, 적어도 반은 줄어들 텐데 말이다. 참 현실은 녹록치가 않더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린 자잘한 격식의 차이로 몇 번 투닥거린 적은 있지만 돈 문제로 다툰 적은 없었다. 워낙 주변 사람들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성격들인지라 위에서 열거한 오지라퍼들의 공격에 별 타격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우리지만 양가 부모님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와서 지레 긴장하고 있던 시댁의 혼수 타박도 없었고 그 무시무시하다는 시누이들의 텃세도 없었다. 할머니는 내 사주에 금여살이 들었다고, 결혼은 잘한 모양이라며 그 공덕을 부처님께 돌리셨다(내 사준데 그분께 왜!).
결혼은 장사도, 신분상승 도구도 아니다 아무튼 많은 오지라퍼들의 참견과 공격을 귓등으로 막아내고 우린 전국일주를 했으며 작은 평수의 전세에서 시작을 했고 반지 교환 외에 별다른 예물도 하지 않았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이제와 되돌아보니 하고 나면 별거 아닌 문제들인데 조금이지만 준비 기간 동안 오지라퍼들의 공격에 마음 상했던 게 억울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결혼정보업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재혼 남녀 684명 중 '집 장만 시 부부간 바람직한 분담 비율'에서 36.4%의 남성이 '70 : 30'의 비율이 적당하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100 : 0', 즉 모두 남성이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이 29.4%나 된다고 했다.
과거부터 '남성은 집, 여성은 혼수'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시대에 따라 이러한 가치관에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뭐 여성에게 바라는 혼수도 많은 데다 남녀 월급 차이부터 가사노동의 비율, 여러모로 포기해야 할 부분 등을 짚어가며 집 정도는 남자가 해 와야 한다고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는 노릇. 그렇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왜 너는 남성(혹은 여성)으로 태어났느뇨?'에 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이 대목에서 필요한건 양심. 너무나 평범한 진리지만 적당히 받았으면 적당히 주고, 별반 해줄 게 없으면 유별나게 바라지도 말자는 것. 혹은 좀 덜 받았으면 사는 동안 받고, 좀 많이 받았으면 사는 동안 좀 더 많이 주고. 결혼은 장사도 아니고 신분상승의 도구도 아니라는 것.
본인이 가진 능력은 쥐뿔 하나도 없으면서 남편(혹은 아내) 하나 잘 만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돈, 돈, 돈'만을 따지니 신성한 결혼식에 언약은 없고 장사 속만 들어차는 것이 아닐는지. 영악하고 약삭빠르게 사는 것도 삶의 방식이라지만 평생 살 부비고 사는 부부끼리 첫 단추부터 그러면 재미가 있나, 재미가.
이도저도 안 되면 결국, 월세에서 신혼을 시작해도 축복해주고 숟가락, 젓가락만 싸가도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들, 끼리끼리 만나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라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나? 어째 해답이 안 나오는 문제라 그런지 뒷맛이 쌉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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