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간 두지리 나루터에 운영중인 황포돛배
윤도균
지난 6월 어느 날 임진강 두지리 나루터 인근으로 새로 이사를 하신 외사촌 누님댁에서 집들이 겸 친목회가 있어, 누님댁을 방문하여 친목회를 가진 후 임진강 김교화두지리 나루터에 몇 년 전부터 운행하고 있는 "황포돗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임진강 유역에 6만여 년 전에 형성된 적벽에 세계적 희귀종 돌단풍이 뿌리 내려 서식하는 소중한 자연환경 현장을 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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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강 황포돛배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나루터에 운영중인 임진강 황포돛배 모습 ⓒ 윤도균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해 남북한의 7개 시군을 통과해 한강으로 합류하는 연장길이 272㎞의 한강 최대 지류. 삼팔선이 강의 절반을 자르며 통과하고 있어 우리에게는 늘 아픔의 강으로 남아 있다. 예로부터 임진강은 마포나루로부터 서해의 해산물이나 지역의 농산물을 가득 실은 배들이 왕래하던 평화로운 강이었다. 6.25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그랬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다.
황포돛배는 조선시대 황포돛대를 모델로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길이 15m, 폭 3m의 몸체에 12.3m의 돛을 달았다. 황포돛배를 타고 양편에 형성된 자장리 적벽(임진강에는 11개의 적벽이 있는데 이중 북한 지역에 7개 남한 지역에 4개)과 원당리 적벽을 바라보며 따라 내려가다 보면 원당과 사미천 일대에서 흘러내려 오는 계류와 만나는 지점 인근 고랑포 여울목에서 회선을 하게 되는데 유람선 선장의 해설에 의하면 갠 날은 개성의 송악산 일대가 뚜렷이 보이고 6km 구간을 45분 정도 운행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40여 년 전 푸른 군대 생활 시절 이곳 연천군 백학면 일대 주민들에 대한 당시 임진강 "틸교(현재 철거되고 그 자리에 비룡교)"를 출입하는 민통선 북방 주민들과 방문객 출입증(패스)을 발급 업무를 책임 할 때 임진강을 건너 연천군 백학면 일대 단위 마을을 구석구석 방문하며 출입증 발급을 하여주던 군시절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는 지역을 이날 황포돛배 유람선을 타고 왕복 하면서 바라보니 불현듯 그때 그 푸른 제복 시절의 감격에 잠시 젖어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임진강 황포돛배를 타고 지나다 보면 6·25 사변 당시 자장리 주민 7가구가 임진강 자장리 적벽 구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에 숨어 피난 중 어느 날 어린이 한 명이 보이질 않아 동굴에서 함께 피난생활을 하던 7가구 주민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어린 아이를 찾던 중 "한국군이 오인 정보"에 의하여 인민군이 이곳 피난민들 속에 끼어 있다는 정보로 무차별 사격을 가해 이곳 임진강 자장리 적벽 동굴 속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자장리 주민 7가구 수십 명이 한 날 한 시에 몰살을 당하였다는 가슴 아픈 사연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비록 짧은 한 시간여 못 미치는 황포돛대 유람을 끝으로 배에서 내려 귀가를 서두르고 있는데 "잠자는 자연을 흔들어 일깨운 쇠꼴마을"이란 팸플릿을 유람선 승객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는 쇠꼴마을 촌장 김교화씨에게 팸플릿을 받아들고 돌아와 며칠 후 "쇠꼴마을" 홈페이지
http://www.joyr.com를 방문하여 김교화 촌장이 각별히 애착을 갖고 이곳 "쇠꼴마을"에 온 정성과 비용을 쏟아부어 일구고 있는 새로운 농촌 건설 정신에 감명 받아 남들은 휴가 기간이라 부산의 해운대다, 강원도 속초다 하면서 하나같이 차를 몰고 먼 곳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나는 올해 2학년 된 손자아이(도영이) 손잡고 나의 고향 마을과 이웃한 경기도 파주시 법원리 금곡리에 소재한 '쇠꼴마을' 체험을 위하여 2박 3일간의 휴가 일정 계획하에 '쇠꼴마을'로 달려간다.
아내 도영이 할머니는 모처럼 두 아들들이 '어머니 아버지 휴가 즐겁게 보내고' 오시라고 시간을 내 주었는데 고작 당신은 아는 곳이 파주밖에 없느냐고 이미 차를 운전하여 신바람 나게 자유로를 달리고 있는데도 몇 번이나 불만스런 표정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지만 "춘향이 한 번 먹은 마음" 변하면 이도령은 어떻게 하느냐? 말도 되지 않는 어리석은 물음 답변으로 나 같은 골수 농촌사랑 마음을 지닌 사람들도 더러는 있어야 '농촌에 뜻을 두고 사는 농부들'이 희망과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아내를 설득한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너도나도 하나같이 소문난 피서지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 많은 사람 인파 속에 껴서 무슨 피서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랑하는 손자 아이 도영이에게 농촌 생활 환경을 일깨워 줄 수 있도록 할아버지 할머니 위주가 아닌 손자 교육 차원에서 생각하라고 강조를 하니 도영이 할머니도 더 이상은 군말 없는 가운데 집에서 1시간 15분여 걸려 '쇠꼴마을' 농장에 도착을 하니 무더운 날씨 탓인지 아니면 허술한 농장 모습을 보고 기대에 어긋났기 때문인지 다시 아내가 실망스런 표정을 보이니 나 또한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일단 점심을 먹을 겸 감악산 계곡을 가 보니 그곳은 수량도 풍부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유원지 특유의 피서객들이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곳곳에서 '니나노 풍경'이 벌어지며 고성방가하는 현장을 목격한 '9살 된 손자 아이가 하는 말' 할아버지 여기는 어린이들이 있을 곳이 못된다면서 빨리 다른 곳을 가자고 성화를 하여 도영이 할머니와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손자 아이를 바라 보면서 이 아이를 영리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무섭다고 해야 할는지 어떻게 9살된 아이가 저렇게 똑 떨어지게 자기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놈 참 맹랑하네 …하고 다시 한 번 손자 아이를 주시하다가 그래 도영아 너의 말이 맞다 정말 우리 도영이 똑똑한 어린이라고 칭찬을 하여 주니 이 아이 도영이 아주 신바람이 나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먼저 데리고 가신 곳이 어린이들 교육적으로 훨씬 좋은 곳인데 할머니께서 괜히 불평을 하신다고 은연중 할머니를 나무라는 투로 힐책한다.
도영이 할머니 '나 참 기가막혀' 하면서 어쩔 수 없지요 두 남자가 그렇게 한마음이니 당신 소원대로 '쇠꼴마을'로 갑시다 해서 우리 가족은 다시 '쇠꼴마을'에 도착하여 큼지막한 방갈로에 여장을 풀고 뒤이어 늦게 합류한 여동생 부부가 마찬가지로 손자 아이 승재를 데리고 도착을 하니 다소 실망스러 웠던 분위기가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바로 우리 일행들이 묵는 코앞에 있는 '쇠꼴마을 수영장'에 두 아이가 뛰어들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도영이 할아버지 매년 여름철이면 손자 아이 데리고 다녀 본 그 어느 일류 시설 휴가지 수영장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뤄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수영장 시설이 무엇보다도 맘에 쏙 들어 내가 직접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에 들어가 보니 '수영장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수질인데' 이곳 '쇠꼴마을 수영장'은 연 평산 기슭 일체의 오염원이 없는 계곡에 지하수를 개발하여 온종일 100mm 이상 되는 송수관 파이프에서 솟구쳐 나오는 손이 저릴 정도의 차가운 샘물이 수영장에 흘러들어 불볕더위에 데워져 적당한 온도를 이뤄 물안경을 안 쓰고 수영을 해도 눈에 일체의 염증이나 부작용 없이 물 속이 선명하게 훤히 들여다보이고 그러다 보니 수영을 하고 나와서 특별히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영장 물이 깨끗하고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