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률의원실/이정희 의원실 공동주최로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문가가 본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법적 효력' 토론회에 초청된 국회사무처의 이종후 의사국장이 불참해 자리가 비어 있다.
남소연
박경신 교수(고려대, 미국법)에 의하면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없다고 한다. 미국과 프랑스에는 왜 없을까? 박 교수는 그 이유로 '당내 민주화의 정도'를 언급했다. 당시 토론문 중 일부를 보자.
"미국, 프랑스 모두 같은 안건을 같은 회기에 다시 올릴 수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당내민주화의 정도라는 점에서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사부재의 조항은 국회의원의 독립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2009.7.27. 민주당 등 야4당․민변 공동주최토론회 「전문가가 본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법적 효력」)
'당내 민주화의 정도'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필자는 이전 글
"DJ는 왜 5시간 19분 동안 국회 연설했나"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진행방해)에 대해 글을 적었다. 미국 의회에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없는 것은 필리버스터 등 의회 규칙이나 문화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필리버스터는 타협을 통한 의안 통과를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장치먼저 필리버스터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미국 상원에서 허용되는 필리버스터는 상원에서 원내 소수당 측이 표결할 경우 통과가 예상되는 법률안이나 수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의사진행 지연전술의 하나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방법은 무제한토론을 허용하고 있는 상원규칙을 활용하는 것이며 그외 다른 형태의 원내전략이 이용되기도 한다(국회사무처 의사국, 『미국의회 의사절차』(2004), 453면).
이와 같은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로 인해 하원에서는 주요 안건이나 논란이 많은 안건을 통과시키려면 단순과반수의 지지만 확보하면 되지만, 상원에서 안건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려면 의사진행방해, 이른바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적어도 60표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필리버스터는 타협을 통한 의안 통과를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장치인 셈이다. 필리버스터 옹호론자인 미국의 Byrd 의원의 말이다(1993.11.10. National Journal's CongressDaily).
"미국의 상원이 현재와 같은 특유의 상부 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한 요인들 중 하나는 오래 연설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소수의 권리 보호가 국가에 매우 유익할 때가 되었다. 세계사에 있어서 많은 위대한 주장들은 처음에는 단지 소수에 의하여 지지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그들이 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 사회가 그 구성원이 장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공의 장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들의 자유는 보장될 것이다." 소수당 원내총무 Dole 의원 역시
"상원에서 소수의 권리는 고귀한 것이다. 소수의 권리는 소수당의 이익뿐만 아니라 개개의 주를 포함하는 경제적, 지역적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1994.9.20. 워싱턴포스트)"라며 Byrd 의원의 말에 동의했다. '대통령․의회민주주의' 미국 의회는 타협을 중시미국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통한 소수당의 의사진행방해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원의 경우는 어떨까? 미 의회는 상하 양원으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규칙에 의해 진행된다. 하원의 의사규칙은 원내다수파의 의지가 관철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임에 반하여, 상원 의사규칙은 개별의원이나 원내소수파에게 상당한 의사운영상의 권한을 부여하여 신중하게 의안을 처리하고 심지어 의안의 처리를 지연․방해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국회사무처 의사국, 『미국의회 의사절차』(2004), 453면).
하원 규칙은 좀 더 엄격해서 「의사진행지연전술」을 쓰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 "미국 하원은 복잡한 입법 절차를 갖고 있는데, 입법이 시급하거나 중요한 법안의 경우 다양한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입법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국회입법조사처,「미국하원의 신속입법 처리절차」, 2009.2.22.).
그러나 의장의 권한이 매우 강력하고 당파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하원에서도 상임위 심사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는 절차는 없다(국회입법조사처, 「국회의장 직권상정 해외사례」, 2009.2.8.). 또한 상하원 모두 강제적 당론이 없으므로 의원들이 법안의 내용조차 모르는 채 그저 '찬성' 버튼을 여러 번 누르는 일은 더욱 상상할 수조차 없다.
또한 의회 의사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여러 가지 의사절차 상의 수단을 통하여 가끔 지연전술을 쓰기도 한다. 의사진행의 효율 외에 사회적 혼란을 예방하는 '타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타협의 문화'를 중시하는 미국 의회의 특성은 미국 의회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정치에서 옳은 답이란 없다. 욕심과 야망이 공개적으로 지식과 지혜를 겨루는 곳에서 집단간의 타협의 물결만이 있을 뿐이며, 이러한 타협에 의해 일련의 공공정책이 산출된다."(1987년 5월 20일, 미국의회기록 S6798)
이처럼 '타협'을 중시하는 미국 의회에서는 소수당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장치가 있다. 따라서 동일한 의안에 대해 한 회기에서의 중복 처리를 막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회의장의 영향력은 존경과 설득 등에서 얻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