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전후해 일어났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괘관산 숲.
조종안
굽이굽이 이어지고 줄기차게 뻗어나가는 산줄기들, 그것은 소백산맥이 일으키고 있는 산물결이고 산파도였다. 덕유산까지의 길은 그 억센 물결과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행군이었다. 수많은 산들은 가지가지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북으로 올라갈수록 봄은 더딘 걸음을 걷고 있었다···. (태백산맥 9권 36쪽)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는 남덕유산 송치골에서 열리는 '남반부 6개 도당위원장회의'에 참석하려고, 왜놈들에게 고문을 당해 절룩이는 다리로 험준한 산악을 행군하던 전남 도당위원장 박영발이 나무 그늘에서 염상진과 얘기를 나누다 "참으로 만산에 진달래고, 꽃잎마다 뻐꾹새 피울음이요!"라며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던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배고파 죽은 자식들을 찾아다니는 어머니의 환생이 뻐꾹새 울음'이라는 전설을 알고 있던 염상진이 한탄을 시 읊듯 하는 박 위원장에게 어머니는 일찍 사별하셨느냐는 말도 물어보지 못하고 집에 두고 온 아내 '죽산댁'과 아들 '광조', 딸 '덕순이'를 생각하며 아파하는 마음도 그려졌습니다.
박 위원장이 "염 동지, 나한테도 자식들이 있소. 그 아이들이 진달래꽃을 따 먹게 하는 건 우리 대에서 끝나게 해야 되는 것 아니겠소"라고 묻는 대목과 염상진이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끼며 "예 그래야지요. 꼭 그래야지요!"라고 힘주어 대답하면서, 박 위원장이 자신에게 무슨 이유로 새삼스러운 질문을 했는지, 그 뜻을 깨우치는 대목도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나뭇잎들이 짙다 못해 검정빛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는데도 제2 제3의 이동통로나 예비거점에 매복이 처져 있고, 토벌대들이 사령부의 비트 지점을 공격해오는 것이 자수자나 포로들의 정보 누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했던 전북 도당의 고충도 그려졌습니다.
전북 도당위원장이면서 사령관인 방준표가 이끄는 돌격대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몇 개의 조로 분산되어, 산에서는 보통사람보다 3배가 빠르다는 빨치산의 장점을 살려 이쪽 숲에서 불쑥 나타나 총을 쏴대고는 사라지고, 저쪽 바위 뒤에서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사라지는 전술로 맘껏 화력을 퍼부어대는 토벌대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삼십 중반을 넘긴 방준표는 작전을 지휘하며 총을 쏘아대며 전투에도 참가해 대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소년전사가 죽자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었다는 것이 알려져 대원들을 감동시킵니다. 그는 당 이론이 누구보다 강하면서도 연설할 때는 말 씀씀이가 쉬워 존경을 받아오던 인물이었지요.
토벌대에게 쫓기던 박난희가 손승호에게 "과연 당원답네요!"라고 하자,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서도 '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던 염상진 선배의 초인적인 인내에 고마움과 존경심을 느끼는 대목과 남쪽으로 끝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를 바라보며 염상진을 그리워하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었는데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던 민족이 강대국의 횡포로 남북으로 갈라진 가슴 아픈 역사와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희생된 넋들의 피맺힌 원성으로 들리더군요. 그래서인지 계곡물도 더욱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옥환마을 텃골 가는 길: 선비의 고장 함양은 자연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으로 통영-진주-함양-대전을 잇는 고속도로와 익산-장계 고속도로, 88고속도로와도 연결되며, 서상IC에서 빠져나와 서하면사무소-‘백전’마을 방향 우회전해서 약 6km 지점이 텃골. (국도 26호선, 37호선도 연결됩니다)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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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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