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외화위폐감별사 인증서를 취득한 신도섭 우리은행 차장.
남소연
'위이윙~'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가 싶더니, 10여 장을 도로 뱉어낸다. 불합격 처리된 지폐들이다. 위폐감별기 앞에 선 신도섭 차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한 손으로 지폐를 움켜쥔 뒤, 다른 손으로 빠르게 넘겼다.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신 차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슈퍼노트', 즉 100달러짜리 초정밀위폐가 한 장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신도섭 차장은 우리은행 수신서비스센터에서 외국통화 출납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가는 외화는 하루에만 300만 장, 금액으로 따지만 200만~300만 달러에 달한다. 신 차장은 그 중에서 이틀에 1장 꼴로 위폐를 잡아내고 있다. 신 차장은 "기계에 집어넣은 화폐 중 10~20% 정도가 리젝트(불합격)된다. 기계로는 감별이 완벽하게 안 된다"며 "그 때 (사람이) 손으로 감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색깔을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그럼, 사람은 100%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신 차장은 "전 완벽하다고 보는데……, 잘 모르겠다"며 웃어보였다. 그러면서도 "은행은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이 일은 할 수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진짜 돈과 가짜 돈을 구별해내는 비결은 바로 돈에 대한 '집중력'이다. 그는 "처음에 색깔을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오감이 다 동원된다"며 "화폐를 많이 접해봐야 한다. 그래야 진폐의 특징을 갖지 않은 위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차장은 위폐감별을 위한 손끝 감각을 단련시키려고 수백만 원 어치의 달러를 사서 한 두 뭉치씩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의 손은 늘 호주머니 안에 있었고, 반복해서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있는 여성들이 그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내며 경계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노력한 끝에 신 차장은 최근 국내 최초로 위폐감별사 자격을 취득했다. 외화 위폐감별 능력에 있어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HSBC 은행에서 실시한 최종 테스트에서 위폐를 정확하게 감별해 내, 위폐감별사 인증서(Certificate of Achievement)를 따낸 것이다.
현재 외환은행을 제외한 국내 대부분 은행은 위폐감별사가 없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수납한 외화를 해외은행에 전량 수출하고 필요한 외화를 다시 수입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럴 경우 은행당 연간 수십억 원의 외국통화 수출입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국내 최고의 외화 위폐감별사로 인정받고 있는 서태석(66) 외환은행 금융기관영업부장도 HSBC BOA가 운영하는 위폐 감별 교육과정을 이수했지만 인증서는 받지 않았다. 물론 외환은행은 서 부장을 비롯해 3명의 위폐감별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은행처럼 해외은행에 외화를 수출입할 필요없이, 자체 감별이 가능하다.
신 차장이 이번에 위폐감별사 인증서를 받음에 따라, 우리은행도 자체 감별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은행은 내달부터 외화 거래가 많은 일부 영업점을 대상으로 위폐감별 및 정사업무를 시범 실시한 후 전 영업점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거액의 외국통화 수출입 수수료를 절감하게 된 셈이다.
신도섭 차장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외화출납실에서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신 차장과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화폐에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 은행에 입사해서 처음부터 위폐감별 업무를 했나."처음부터 이 일에 도전한 건 아니다. 영업점이나 관리파트에서도 근무했다. 특히 영업점에 있을 때, 외화출력부에서 위조지폐를 많이 다뤘다. 원래 어려서부터 동전 등 화폐를 모으는 데 취미가 있었다. 나이 먹으면서 별로 생각을 못하다가, 화폐를 많이 만지다 보니까, 자꾸 더 만지고 싶어지더라. 위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초정밀위폐, 중급위폐, 하급위폐로 나뉜다. 초정밀위폐는 거의 똑같고, 중·하급위폐는 누구나 관심 있게 보면 알 수 있다. (일을 하면서) 초정밀위폐를 보니까, 진폐와 너무 똑같더라. 정말 끝까지 비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 생긴 것이다."
- 위폐와 진폐는 어떻게 다른가?"진폐에는 (위폐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의 보안 기능이 숨어있다. 예를 들어, 보는 각도에 따라서 화폐 숫자의 색깔이 바뀐다. 또 화폐를 만지다 보면 오돌토돌한 부분도 있다. 100달러의 숫자 '100'을 자세히 보면 그 속에 작은 크기의 '$100'이 가득 채워져 있다. 또 화폐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안전띠도 있다. 이런 게 모두 보안 기능이다. 보통 30가지 정도가 들어간다.
중·하급 위폐는 (보안기능 때문에) 일반인들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지만, 초정밀위폐인 슈퍼노트는 실제 그 차이가 굉장히 미세하다. 중하급 위폐는 그림의 선이 불선명한데, 초정밀위폐는 거의 똑같다. 그런데 화폐에는 약 30가지의 색사를 사용하는데, 실제 그것을 다 넣다보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위폐에는 다 못 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정밀위폐가 진폐와 색깔이 거의 같지만 약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 색깔을 보고 위폐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그렇다. 물론 오물이 묻으면 구분이 잘 안 된다. 처음에 색깔을 보고, 손끝으로 느끼고, 두께로도 알 수 있다. 오감이 다 동원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진폐일 경우 약간 엷은 푸른색을 띠고, 손가락으로 치면 카랑카랑한 소리가 나는데, 위폐는 약간 둔탁한 소리가 나고 느낌이 매끄럽다. 신권은 냄새로도 구별할 수 있는데, 많이 돌아다닌 화폐는 냄새가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