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발생 6개월째를 맞는 20일 오후 시신이 안치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유가족들이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유성호
"1월 20일 저녁 8시 영안실 앞에 선 전경들에게 '저기 안에 아버지가 있다, 한번만 보여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그랬습니다. '아버지 시신 돌려 달라'고…."
지난 7월 20일 저녁 용산에서 열린 참사 반년 추모대회에서 고 이상림씨의 딸 연선씨가 말했다. 유가족들은 '시신을 메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6개월 전 처참하게 숨진 철거민 다섯분의 시신을 메고 서울광장으로 영안실과 분향소를 옮긴 다음 청와대까지 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가족과 용산범대위는 시신을 인도받지 못했고, 빈 관이라도 들고 가겠다는 행진대열도 경찰에 막혀 장례식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나마 이런 시도가 있어서인지 언론의 주목을 반짝 끌 수 있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장례조차 지내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반문한다. 사람이 여섯이나 죽은 대형참사가 눈발이 날리던 겨울을 지나 한여름이 되기까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장례를 치르지 못한 유가족이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장례식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게 납득될 수 있겠는가. 용산참사의 해결은 아마도 이런 상식의 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상식과 너무도 엇나가는 정부와 집권당은 용산에서 잔인하게 휘두른 손으로 미디어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재개발 바람 부는 곳에 망루가 서는 까닭그들은 강변한다. 철거민들이 불법행위를 했으며, 법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정부 책임이 아니라고. 그리고 재개발조합과 철거민 사이, 즉 사인(私人) 간에 일어난 분쟁이므로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이렇게 모르쇠로 6개월을 일관해왔다.
철거민들이 불법행위를 한 것은 맞다. 남의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올라가 화염병을 던지면서 농성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재개발지역에서 세입자는 무권리 상태로 쫓겨난다. 상가세입자의 경우는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자기 재산을 다 쏟아부어서 권리금을 내고 인테리어도 한다. 그런데 3개월치(용산사건 이후 4개월로 늘었다) 영업손실 보상금만 받고 나가란다. 그래서 맨손으로 나갈 수 없는 억울한 세입자는 조합(사실은 건설자본이 뒤에 있다)과 마찰을 빚는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철거용역을 동원해 공포를 조장하고 폭력을 휘둘러 강제로 내쫓는 것이다.
이때 공권력은 이미 철거용역업체와 조합 편이다. 덩치가 산만한 용역깡패에게 칠순 노인이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아도, 연행되고 구속되는 쪽은 오히려 철거민이다. 그러면 검찰이 구속영장을 치고 법원이 실형을 선고한다. 이처럼 재개발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한 마지막 방어수단으로 망루를 짓고 오른다. 그런 망루에서 몇달에서 일년 가까이 버티면서 생존권을 외쳐온 게 지금까지 철거민의 생존권 투쟁이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이들의 절박한 상황은 외면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무리한 작전 끝에 비극을 불러왔다. 그 뒤에도 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병원에 실려간 이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안절부절하는 가족들을 경찰서에 잡아놓은 사이에 시신을 강제로 부검하고, 뒤늦게 영안실로 달려온 가족들이 몇시간 항의한 끝에야 신원을 확인해주었다. 불에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앞에서 가족들은 오열하다 실신했다. 내 남편이고, 내 아버지인데, 너무도 참혹한 모습에 악만 받쳤다.
미공개 수사기록, 무슨 내용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