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수레를 붙이고 달리던 허머 자전거. 태풍이 몰아치던 날에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최종규
그러다가 두 번째 출판사를 그만두고 충북 충주에서 새 일거리를 얻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자전거와 헤어지는 셈이었는데, 충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고속버스만 타고 다니자니 엉덩이가 너무 쑤시고, 또 내 몸이 게을러진다고 느껴, 한 해에 걸쳐 고속버스가 다니는 길을 살피고 길그림책을 샅샅이 읽고 헤아리면서 '앞으로는 자전거로 이 길을 다녀 보자'고 다짐했고, 그동안 꽤 큰돈을 들여 접는자전거 한 대를 장만했습니다. 이제는 문닫고 사라진 '스포시엘'이라는 곳에서 만든 'FTC-2'라는 녀석으로, 자그마치 54만 원을 치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버릇은 신문사지국에서 짐자전거로 날마다 신문을 돌리면서 들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1월이고 7월이고 언제나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 고작 실장갑 하나 끼고 신문을 돌렸던 일은 기운이 펄펄 넘친 셈인지 어리숙한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1995년 그때에만 하더라도 거의 모두 오토바이로 신문을 돌렸지, 자전거로 돌리는 분이 없었거든요. 비 쫄딱 맞고 자전거로 신문을 돌릴 때에도 고달프지만, 한겨울에 가냘픈 실장갑을 낀 채 신문을 돌리면 손은 얼어붙는데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손발 얼굴은 동상이 걸리지만 등판과 가슴과 허벅지는 땀으로 흥건했습니다(틀림없이 2009년 오늘에도 자전거로 신문 돌리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분들은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합니다).
그러나저러나, 제법 큰돈을 치르고 장만한 자전거로 충주와 서울을 오가지 못했습니다. 고속버스 짐칸에 싣고 몇 번 오가다가 그만 뺑소니 사고를 여러 차례 겪으며 팔다리가 망가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껏 길을 눈과 몸에 조금 익힐 무렵 몸과 자전거가 망가지는 바람에 아프기도 아팠지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 쉰 끝에, 이번에는 헌 자전거로 '스트라이다'라는 녀석을 30만 원에 장만하는데, 저한테 이 자전거를 판 분은 '여기저기 망가져 있는 채'로 넘겨주었고, 저는 어디가 어떻게 망가진 줄을 몰랐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넘겨받고 타던 날, 내리막에서 달리는데 손잡이가 빠져 하마터면 골로 갈 뻔 했습니다. 그래, 저한테 자전거를 판 분한테 연락을 해 보는데 전화를 안 받고 자취를 감추시더군요.
그래도 이 망가져 있던 자전거를 어찌어찌 손질하고 타면서 드디어 충주부터 서울까지 달렸습니다. 4시간 15분. 한 번도 안 쉬고. 그리고 이때부터 충주에서 서울까지 한 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오가는 나날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