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고아낸 토종닭과 닭똥집 볶음, 녹두죽, 빈대떡. 마음이 즐거워서 그런지 모든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조종안
점심 메뉴는 토종닭 백숙에 녹두죽이었습니다. 엄나무, 단너삼 뿌리, 대추, 밤, 마늘을 넣고 가마솥에 푹 고아낸 백숙은 육질이 졸깃졸깃해서 씹히는 맛이 그만이었는데요. 옵션으로 나온 닭똥집 볶음은 직장에서 근무하느라 참석하지 못한 아내를 생각나게 했고, 고소한 녹두빈대떡은 입 안을 개운하게 청소해주는 청소부 같았습니다.
약간 텁텁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인 녹두에 당근, 양파, 부추, 찹쌀이 들어간 녹두죽은 개운한 맛이 일품이었는데요. 오이장아찌와 고구마순 김치, 조개젓의 쌈빡한 맛은 환상적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부모님 산소 입구에 있는 시골마을 식당에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점심을 먹으니까 더욱 의미가 있었는데요. 될 수 있으면 한두 달에 한 번쯤 어디에서든 만나기로 약속하고 오후 3시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헤어졌습니다. 집에서 사흘을 함께 지낸 막내 누님과 매형이 떠나니까 외로움이 더하는 것 같은데요. 빨리 잊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야겠지요.
케이크 하나로 두 번 축하하다고향이 시골이었던 셋째 매형은 어렸을 때 마을 친구들과 군산으로 자주 놀러 나왔다고 합니다. 외사촌형님과 선후배 사이로 학교도 군산으로 다녔는데요. 왜놈들이 만들어 놓은 시내 하수구를 동네 골목 돌아다니듯 하며 놀았고, 정문보다는 담을 넘어 등교하는 날이 많을 정도로 개구쟁이였다고 합니다.
큰형님처럼 느껴지면서 온갖 정이 들었던 셋째 매형이 10년 전 혈압으로 쓰려져 혼자는 식사를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서 방문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받쳐 든 생일케이크에 바짝 다가와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끄면서 일흔네 번째 생일을 축하받았습니다.
상을 치우려고 하는데 막내 누님이 케이크를 다시 살 것 없이 촛불을 다시 밝히고 엄마(셋째 누님) 생일을 미리 축하하자고 제안하니까 모두 그렇게 하자며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요.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초 숫자를 예순아홉 살에 맞추느라 쩔쩔매기에 "열 살짜리 초 하나를 반 토막 내면 된다!"고 했더니 탄성이 터졌고, 결국 셋째 누님 생일축하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면서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매형 네 분 중에 첫째, 둘째 매형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셋째 매형과 막내 매형 두 분이 생존해 있습니다. 그런데 학창시절 운동으로 건강을 다졌던 막내 매형도 막내 누님 병시중을 드느라 더욱 수척해진 것 같고, 셋째 매형은 10년 전부터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까지 잘 해먹고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자궁암 진단을 받고, 7시간이 넘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항암치료를 받아왔던 막내 누님이 매형과 함께 참석해서 행사 의미가 더욱 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 곁을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밥을 떠먹이는 셋째 누님과 연상인 남편 도움을 받는 막내 누님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데요. 그때마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야 몸도 건강해진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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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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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짜리 초 하나를 반 토막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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