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까지 비교적 짧은 거리인 출발점인 월출산 천황사주차장에서 출발한등산은 10분도 지나지 않아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코스별 시간을 살펴 봤을때만 해도 가장 긴 코스로 6시간 동안 등산을 해야 하는 코스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평소에도 조기축구를 하고 있고 체력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는 입구에서 만난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에게도 6시간 코스를 하려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었다. 그러나 결국 '약 3킬로미터 등반'이라는 저조한 성적과 함께 3분의 1지점인 '구름다리'까지도 못 올라가 '중도포기'를 생각하게 됐다.
힘들지 않고 등반을 한 시간은 겨우 10~20분 정도. 이후부터는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이 힘들었다. 탐방로가 잘 정비돼 오르는데 불편은 없었지만 산이 가파라 힘들었다.
산 입구에서 약 1.5킬로미터 구간에 위치해 있던 구름다리에 도착하기 전 이미 녹초가 됐다. '내가 여길 왜 올라왔나?'라는 후회감이 물밑듯이 밀려왔다.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 무모한 등반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안개속 구름다리를 건너 천황봉에 가다
스스로에게 투덜투덜 되며 계속된 등반은 '구름다리'에 도착해 한순간에 풀렸다. 길이는 비록 길지 않았던 구름다리는 마치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팜프파탈과 같았다. 구름다리 주변에 자욱한 안개로 바닥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건널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구름다리 중간에서 밑을 쳐다 보니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순간 밀려오는 의문, 다리는 어떻게 설치했을까?란 궁금증. 그래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 힘들게 가지고 올라간 카메라를 꺼내 사진촬영을 하는 일을 빼놓지는 않았다. 물론 가방에 하나 더 가지고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지는 못했지만...
그야말로 개고생이라고 표현할만큼 힘든 시간은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까지 올라가는 구간이었다. 이따금씩 비는 내리고 안개로 경치를 감상할 수 없다보니 혼자서 올라가는 산행길은 묵언수련에 들어간 스님처럼 고된 시간이 됐다. 이때 이미 온몸은 샤워를 마치고 목욕탕에서 나온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다보니 등산객도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만나는 등산객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곤 했다.
산행을 하면서 얻은 것도 많다.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비켜주어야 하고, 무리하게 등반했을 경우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자주 조금씩 쉬었다 올라야 하며, 짐은 최소화해서 등반해야 하는 등 마치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지식을 얻게 됐다.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죽을 힘을 다해 천황봉 정상에 오를 것은 산행이 시작되고 약 3시간. 중간에 사진촬영 때문에 시간이 지연되었다고는 하지만 코스별 시간대에 나타난 시간보다 두 배 이상이 걸렸다.
정상에 올라 산행에 앞서 산 김밥을 꺼내 먹으려고 펼치자 김밥은 이미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물도 500ml 한 통이상 비워져 있었다. 헌데 그토록 죽기 살기로 올라온 정상인데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진짜 입밖으로 욕이 나오기 일보직전인 순간이었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월출산 정상 비석에 서서 주변 등산객에게 부탁해 기념촬영을 하고 30분의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산을 싫어하는 이유는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점도 있다. 산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반드시 또 다시 비슷한 시간에 걸쳐 하산을 해야 한다. 이 점이 참 싫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등산가들을 존경한다. 900미터도 되지 않는 산을 기자는 죽을 것만 같은데 몇 천미터나 되는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은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뒷걸음 하산, 부르르 떨리는 다리
하산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체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풀릴대로 풀린 다리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한겨울 추위에 온 몸을 떨 듯 그렇게 부르르 떨려 몇 발짝 걷기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뒷걸음 하산이다. 발 뒷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하고 허리를 숙이니 떨리는 현상이 조금 나아졌다. 허나 올라올 때처럼 몇 번씩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창피함은 감수해야 했다. 물론 주변에 등산객이 없어 혼자 씁쓸한 웃음을 지어야 했기만...
그렇게 뒷걸음 하산을 1시간 정도 했을까? 월출산의 명소인 바람폭포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바람목포 이외에도 책 바위라는 신기한 모양의 바위를 확인해 볼 수 있기도 했는데, 주변에 암석들이 참 신기해 꽤 오랜 시간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이후부터는 다시 앞걸음 하산을 하게 됐다.
오후 3시 26분. 하산을 마치고 주자창에 세워진 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시간이다. 이로써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산행은 장장 5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코스별 시간대로라면 3시간이면 끝나는 코스를 말이다.
해남 땅끝마을을 향해
산행으로 인해 다리에 힘이 빠져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월출산 주차장에서 만난 택시기사님의 설명을 참조해 여행 첫날의 최종 목적지인 해남 땅끝마을로 향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못되어서 도착한 해남 땅끝마을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가장 먼저 숙소를 잡고 짐을 풀고 산행으로 인해 땀으로 찌든 몸을 씻었다. 목욕재계에 앞서 인근 분식점에서 뼈 해장국으로 저녁도 해결했다.
여행 첫날을 보내게 될 곳은 인상이 좋아 들어선 가정집과 흡사한 민박이다. 인심 좋은 주인할머니를 만나 1만5천 원에 방을 잡았고 이후 본격적인 땅끝마을 관광에 나섰다.
땅끝마을은 우리나라의 육지의 남쪽 끝이라는 상품을 내세워 유명해진 관광지다. 관광유명지답게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꽤 많은 숙박업소와 식당이 분포돼 있었다.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주로 눈에 띄었는데 저마다 땅끝을 표시하는 비석과 같은 곳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다른 관광객처럼 주요 지점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땅끝 전망대로 향했다. 땅끝 전망대로 향했다. 땅끝 전망대를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도보를 이용하는 방법과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방법 두 가지다.
첫날 오전부터 시작된 무리한 산행으로 다리가 아파 왕복 탑승권을 끊고 전망대에 올랐다. 모노레일은 네모난 상자 두 개를 높이를 달리해 붙여놓은 형태였는데 수송시 한정된 인원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티켓에는 비행기, 버스, 배 등 기타 운송수송과 같이 탑승시간이 기재되어 있었다.
다도해의 아름다움, 그저 '와~'할 수밖에...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을 보였던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오르는 길. 땅끝 마을 전체와 멀리 바다 위에 각양각색의 크기의 섬들이 연출한 아름다운 다도해가 펼쳐졌다.
한창 다도해의 경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셔터를 눌러대던 그때 모노레일이 멈춰서며 전망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전망대에 입장하기 위해서 또 다시 입장권을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상위층인 9층 전망대에 올랐다.
9층 전망대는 전 벽면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데 이 곳에서는 망원경과 눈을 이용해 끝었이 펼쳐진 바다위에 떠 있는 섬들이 연출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펼쳐졌다.
순간, 숨이 '헉' 하고 막혔다. 그리고 언젠가 여행전문가의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봤지만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었다'란 말.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도 '와~'하며 저마다 사진촬영을 하기 바쁘다. 그래 더 이상의 표현이 없다. 그저 '와~'할 수밖에.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첫날 일정이 마무리됐다. 다시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채우고 맥주 한 캔으로 피로를 풀었다.
두 번 째 일정인 김해시 봉화마을과 포항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 다시 부푼 가슴을 달래며 잠자리에 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