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주택가.
권우성
평범한 남성이 1억5천만원을 모으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릴까? 1년? 2년? 주식이나 재테크 수단 없이 '적금'만 이용해서 모은다면, 모르긴 몰라도 3년 안에 5천만원 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물론, '월급을 얼마나 받는가'가 문제지만 3년 동안 한 달에 100만원씩 꼬박 모아도 3600만원이니.
그런데 요즘 남성들은 결혼 적령기인 30대 초중반까지 1억5천만원을 모아야 한단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20대 후반에 첫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감안하면, 5년 이내에 1억이 넘는 큰돈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돈', '돈' 하나 싶을 테지만,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택의 유무가 결혼의 걸림돌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45
%, 여성의 37%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결혼 시 자택 마련 비용으로 얼마가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38%가 '8천만원~1억원', 29%가 '1억~1억5천만원'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전세자금이 1억5천?..."정말 씁쓸하구만"사실 이런 결과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 남성인 나는 착잡하기만 하다. 나 이외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엔 정규직 일자리도 감소했고 취직을 한다 해도 인턴이나 비정규직이다. 막상 정규직으로 취직을 해도 초봉 2000만원이 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억대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다니….
물론 이 설문조사를 무작정 신뢰하기도 힘들다. 여론조사 대상자가 587명으로(남 281명, 여 306명), 아주 적은데다 설문 대상자들의 소득수준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 도심에서 전셋집을 구하려면 적어도 1억5천만원~2억원 정도의 큰돈이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4년제 대졸자가 27살에 중소기업에 취업해 연봉 2000만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가정하고 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자. 2000만원 중 절반은 쓰고 절반을 꼬박 모아도 10년은 넘어야 1억원이란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결론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상황이 이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남성에겐 '결혼'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나도 지난 6월에 결혼했지만, 여론조사에 나온 것처럼 1억5천만원을 준비해 놓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놀지 않고 적금과 예금을 털어 결혼준비를 했는데, 신혼집 마련에는 아내와 내가 절반씩 부담해 6천만원 정도 돈으로 집 전세금을 준비했다. 둘이 합한 금액으로는 조금 부족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매달 얼마 되지 않은 월급에서 생활비와 대출금을 갚고 나면, 간단한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빠듯하다. 이것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 외곽에 집을 얻어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허탈감' 조장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