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지성사
두어 달쯤 앞서,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일꾼 자가용을 얻어타고 마실을 한 적 있습니다. 늘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던 길을 자가용으로 움직이니 몹시 새삼스러웠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아홉 해를 지내는 동안 자전거 다음으로 지하철을 가장 많이 탔고, 버스는 아주 드물게 탔으며, 택시는 훨씬 드물게 탔는데, 자가용은 더더욱 드물게 탔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몸에 땀을 줄줄 흘리지 않고 자가용을 타니까,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무게를 느끼지 않고 언덕길을 사뿐히 올라가니까,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데에도 시원하게 앉아서 다리쉼을 할 수 있으니까,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좋았습니다. 힘이 안 든 대목에서는.
그렇지만 힘이 안 들기 때문에 '힘을 덜 쓴 대목에서 좋다'뿐이지, 이렇게 힘 안 빼고 다니는 일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한 권 사서 읽어도 그 책에 걸맞게 값을 치르면서 장만하여 읽어야 제맛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으려고, 아기 돌보고 빨래하고 집살림 꾸리는 틈틈이 졸린 눈 비벼 가며 읽어야 참맛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보리술 한 잔을 거저로 얻어마셔도 짜릿하겠으나, 저 스스로 땀흘려 일해 번 돈을 치르며 사마시는 보리술 한 잔 맛에는 견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가용 마실은 자가용 마실대로 맛과 멋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자가용 마실도 재미있습니다. 부산 광안다리는 자전거로 건널 수 없는 한편, 걸어서도 건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길은 차를 얻어타고 지나면 새삼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만, 저는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에서 보는 모습이라든지,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없는 데에서만 보는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 결국 나 혼자 조심하고 나 혼자 열심히 자전거를 탄다고 이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을 듯 보였다. 인터넷의 자전거 동호회는 그렇게 인기가 높건만 한 발짝만 바깥으로 나가면 일반인들은 자전거에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전거를 안전하고 즐겁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동호인이 아닌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28쪽/윤준호)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던 지난날, 처음 몇 해는 지하철을 곧잘 탔지만, 지하철을 타면서 흐뭇하거나 기뻤던 일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제법 먼길을 천 원 안팎이면 실어다 주니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살림을 꾸리던 1995년에는, 이때 제 일터이자 살림집이었던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1998년과 1999년에도 웬만하면 신문배달 자전거로 움직였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독립문이나 종로까지는 으레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이문동에서 미아리로 가든 상계동에 가든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립문이며 종로며 신촌이며 미아리며 상계동이며 하는 헌책방을 다녀올 때에는, 신문배달 자전거 짐받이에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친친 묶어서 신나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8월 8일부터 신문배달 일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가던 때부터는 자전거하고 멀어졌습니다. 주머니가 가난하여 자전거를 살 돈이 없기도 했고, 일터에 '출판사에서 쓰는 자전거'가 있지도 않았으니 타고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출판사에 자전거 한 대 있었다면, 이문동에서 서교동으로 자전거로 오갔으리라 생각합니다. 2000년에는 일터하고 가까운 종로구 평동으로 살림집을 옮겼는데, 얄궂게도 이때부터 다닌 출판사는 김포공항 쪽에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걸어서 일터를 다니려던 꿈(종로구 평동에서 서교동으로)을 접고 지하철을 탔는데,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신촌이나 외대 앞이나 청구동이나 용산 쪽 헌책방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으레 걸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가방에 책을 잔뜩 채우고 두 손에는 끈으로 질끈 동여맨 책꾸러미를 영차영차 땀 뻘뻘 흘리면서 신나게 걸었습니다. 가방에 채우고 두 손에 든 책짐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이 되기 일쑤였지만, 한 시간 남짓 걷는 밤길이 고단해 쉬엄쉬엄 쉬면서 돌아오곤 했지만, 왠지 지하철을 타기보다는 팔힘이 쪽 빠지더라도 걷는 길이 좋았습니다.
때로는 노량진부터 한강다리를 넘는 길을 걷기도 했는데, 이렇게 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낮에도 그렇고 밤에도 그렇습니다. 길을 거닐며 늘 느꼈지만, 이 길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거님길은 언제나 들쑥날쑥이거나 전봇대나 거리나무가 걸리적거리도록 놓여 있거나, 으레 공사중 간판이 붙으면서 어지럽혀져 있거나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보도블럭 까뒤집기'는 숱하게 보았어도, '울퉁불퉁하고 깨진 거님길 손질하기'는 거의 못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