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문우들박해전 시인(인터넷신문 '참말로' 회장), 박몽구 시인(월간 '샘터' 전 편집장), 방남수 시인(노무현 추모시집을 펴낸 도서출판 '화남' 사장) 등과 함께.
김이하
그렇게 결정을 했지만 나는 계속 마음속으로는 갈등을 했다. 지방에서 사는 핸디캡 같은 것을 곱씹으며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MB악법'의 하나인 '미디어법'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한나라당이 22일 미디어법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할 것이 확실해지는 시점이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그것을 막기 위해 육탄전을 불사할 터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수적으로 절대 우위를 확보하고 있고, 한나라당 국회의장은 경호권 발동이라는 무기도 손에 쥐고 있으므로 미디어법은 난장판 속에서도 요식으로나마 통과될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것을 생각하니 나는 이상하게 좀이 쑤시는 듯한 증상을 느끼게 되었다. 집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내 한 몸이 집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라도, 도저히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심정이었다.
나서고 싶었다.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시인들 속에서 비분을 함께 나누는 일만이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나는 22일 오전 마침내 서울 출타를 결심하고, 다시 여러 가지 약을 챙겨 가지고 오후 2시 30분 강남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TV를 통해 국회의 전쟁 상황, 악랄하고도 치사한 날치기 장면을 다 보았다. 한마디로 불쌍한 인간들이었다. 오로지 오늘의 권력에만 시야가 갇혀서, 자신의 얄팍한 이기에만 눈이 어두워서 만행을 저지르는 저 정치 소인배들, 치졸한 군상들의 작태에 신음과 한숨을 삭이면서 측은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저런 짓을 하려고 가방 끈을 길게 늘이는 공부를 했단 말인가? 겨우 저런 치졸한 짓거리를 하려고 TV 앵커 노릇을 하며 명성(?)을 쌓았단 말인가? 오늘의 저런 만용으로 미디어법을 통과시켰다고 해서 그 법이 순조롭게 통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은 근본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안고 있다. 국민을 얕잡아보는 수작이 내재되어 있다. 그동안 조중동의 덕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습성화되어 있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흐르고 흘러도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 또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망각이 빠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서거 조문객이 500만 명에 이르고,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다 해도, 그 수는 전체 국민의 일부일 뿐이다. 극히 소수만 용산미사니, 반대집회니, 항의시위니, 노조파업농성이니 하며 까불 뿐이고, 절대 다수 국민은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갖가지 위락시설들에서, TV 드라마 앞에서, 쇼핑 매장 안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방송 장악이 온전히 되지 않고, 인터넷 언론이 활성화되어 어딘가 뚫리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미디어법 통과로 조중동과 재벌들에게 방송 채널을 갖게 하면 더욱 나은 조건 속에서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미디어법만 통과시키면 우리는 절대 정권을 다시 빼앗기지 않고 장구하게 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