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출마선언 연설하는 노무현 대통령.대선출마에 앞서 자신의 정치관을 말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이종호
역사의식은 시대를 보는 눈이다. 한 사회가 역사의 어느 좌표에 있는지를 가늠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노무현은 아마도 역사의식이 가장 투철했던 대통령이었던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지도자에 따라 가장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 시기 역사를 정체시키느냐, 후퇴시키느냐, 진보시키느냐 하는 지도자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판단이라는 것이죠. (중략) 그래서 '한국의 역사가 뭐냐?' 이거죠. 친일 잔재, 독재의 잔재, 이런 것들을 청산해 가는 과정 아니겠어요?" (본문 254쪽)그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자고 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그의 핵심공약이었던 수도이전은 헌법재판소가 600년 전의 경국대전을 근거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이 과거사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인터뷰>를 보면 그는 항상 역사적인 평가를 의식하는 대통령이었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의 성숙 단계를 3단계로 구분하고서 참여정부가 한국 사회를 성숙한 민주주의의 단계인 세 번째 단계로 진입시키려고 했다.
[셋째]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이다.
노무현은 스스로가 'e 지원'이라고 하는 청와대 업무 통합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할 정도로 시스템을 이용한 국정운영에 힘썼다. 시스템에 의한 국가운영이란 국가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실제 노무현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상당히 포기한 것은 그만큼 다른 국가기관들이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서 하나의 시스템 모듈의 역할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각종 위원회가 많이 만들어진 것도 (폐해가 없지는 않았지만)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시스템 운영의 단적인 사례를 2007년 10월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룻밤 더 쉬어가라, 대통령이 그것도 마음대로 결정 못합니까?'라고 하자 '큰 것은 내가 결정하지만, 작은 것은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전팀, 경호팀과 상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 한마디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믿음을 줬다. 평상시에도 저렇게 시스템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본문 92쪽)[넷째] 사람중심주의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무너진다. 훌륭한 지도자는 시스템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자율성을 여백으로 남겨둔다. 제정로마시대를 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이 점에서 탁월했다. 얕고 넓은 세제와 적은 수의 군단으로 광대한 제국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의한 상류층의 기부, 속국민들의 로마화라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3세기 경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말단 행정까지 세세하게 다듬었지만 그 결과 계층 간의 유동성이 경직되면서 로마다움을 잃어버린다.
인간을 시스템 운영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끌어들일 때 그 시스템은 훨씬 더 안정적이다. 각종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그것을 새로운 시스템의 동력으로 삼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2006년12월 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을 보면 당시 청와대에서 정보가 어떻게 수집 정리되고 관리되는지 일단이 나와 있다. 일차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가 수집되고 또 상호검증 과정을 거친 뒤 대통령에게 정리돼서 보고된다. 그에 대한 언론보도가 잘못되면 즉시 정정보도 요청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