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트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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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드라마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독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우선 공감할 수 없는 정서를 꼽을 수 있다. 드라마의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 코드가 시청자가 바라보는 지향점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욕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드라마가 가진 '대리만족'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외인구단>이다.
<외인구단>은 이현세 화백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원작으로 한다. 83년 출판된 <공포의 외인구단>은 영화 및 소설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80년대를 강타했던 <공포의 외인구단>의 작품성과 대중성은 이미 충분히 검증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리메이크된 드라마는 실패했을까? 문제는, <공포의 외인구단>이 무려 20여년 전의 작품이라는 데 있다.
야구와 엄지가 전부인 오혜성, 그의 뒤에는 손병호 감독이 있었다. 그는 오혜성에게 야구든 사랑이든 자신의 것을 지키고 싶으면 강해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혜성과 팀원들을 무인도에 데리고 가서 지옥훈련을 시킨다. 오혜성은 마동탁에게서 야구를 이기기 위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처절할 정도로 희생을 감수한다. 이는 70~80년대를 살아간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 시절을 관통하는 사회적 정서는 그런 것이었다. 높은 노동시간과 상대적인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성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서, '나'의 희생을 '조직'의 발전에 연결시키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성공과 출세가 최우선이던 때였고,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던지는 지고지순한 순애보가 통하던 때였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에 환호하던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21세기엔 도저히 이해 안 가는 80년대 오혜성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성공이나 출세에 연연하지 않는다. 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에서 적당한 연봉을 받으면서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주력한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조직을 발전시키려는 생각 같은 건 없다. 꿈을 성취하려 하기보다는 안정을 우선으로 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희생을, 순애보를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그런 이들에게 80년대의 오혜성이 먹혀들 리 없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지옥훈련을 마다 않고 일부러 경기에서 패하는 오혜성을 좋다고 바라볼 시청자는 드물다. <외인구단>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정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대중의 욕망이 달라졌다는 것을 짚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성공을 그대로 답습하려 한 기획과 제작에 있었다.
스포츠 드라마임에도 스포츠가 주가 되지 못하고 부가되는,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양념 수준으로 전락한다는 것도 문제다. <외인구단>의 경우 회를 거듭할수록 야구는 뒷전으로 한 채 오혜성과 엄지, 마동탁의 삼각관계만 부각되었고, <트리플>은 그나마 양념 수준도 못 되는 처지가 됐다. 의붓남매, 친구와 친구 아내, 17년 지기 우정으로 대변되는 세 커플, 여섯 남녀의 사랑 이야기 속에 피겨 스케이팅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론 <트리플>의 연출자인 이윤정 PD는 드라마 방영 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트리플>을 스포츠 드라마가 아닌, 사랑 이야기라고 못 박은 바 있다. 그러나 연출자의 바람과는 달리 언론은, 그리고 시청자는 <트리플>을 스포츠 드라마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한쪽에서 아무리 "<트리플>은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야!"라고 외치면서 사랑을 그려도, 다른 한쪽에선 "무슨 피겨 스케이팅 드라마가 이래?"라며 불평하게 되는 것이다.
잇단 실패에도 '스포츠' 미련 못 버리는 제작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