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청와대 제공
하지만 정부는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정부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어렵게 자리잡은 판잣집마저 허물었다. 도시의 유랑인이 된 그들의 자식들 또한 대다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도시의 빈민층으로 전락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독가촌에 눌러앉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하루 품삯이 쌀 한 되 혹은 강냉이 한 되도 되지 않던 시절, 자식들 교육은커녕 먹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누구는 부잣집 가정부로, 누구는 주물공장이나 가방공장으로 떠났다.
나이 들어 내 집이라고 주장해 볼 수도 없는 독가촌의 사람들은 지금도 땅에 대한 권리가 없어 토지세로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를 이 대통령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질곡의 역사를 알지 못하니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오직 박정희식 이주대책일 뿐이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화전민 이주대책은 언뜻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소탕 작전과 아주 흡사했다. 당시만 해도 '무장공비'의 출현이 잦았던 시기라 정부로서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산촌의 집을 그들의 은신처 또는 부역자들의 집으로 여기는 면도 있었다.
하여 박정희는 산촌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달아 마을에 터를 마련하여 집단 생활을 하게 했다. 과거 빨치산 토벌대들이 산자락 아래에 있는 마을을 방화하여 은신처나 식량보급을 차단한 것과 비슷한 '작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굳이 법으로 화전민들을 이주시키지 않아도 지금의 산촌마을은 텅 비었다. 그들이 삶터를 버리고 떠난 것은 1980년대를 전후한 시점이다. 산촌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한 목적은 아이들 교육이었다.
그나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다수는 고령의 노인들이다. 땅이 삶의 근본이라고 여기며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농사 짓는 일밖에 할 수 없고, 땅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번 정류장은 김씨네 논입니다"그러던 중 1990년대 중반부터 전원주택 붐이 일었다. 먹고살만해진 도시 사람들은 다시 시골을 꿈꾸기 시작했다. 버려진 채 쓰러져가던 빈집이 날개를 달았다. 공짜로 준다 해도 필요없다던 이들이 집을 사들였다. 몇 사람을 거치면서 값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투자만 했지 실제 시골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산촌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한 사이에도 계곡을 끼고 있는 땅은 계속해서 올랐다. 원주민이 평당 3천원에 판 땅이 몇 년 사이 몇 십만원으로 올랐다. 원주민들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었다. 땅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은 탓이었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즈음해서 시골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시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시골로 내려왔다. 빈집은 다시 호황기를 맞았다. 그렇게 시골살이를 시작한 그들조차도 이 대통령의 생각과는 다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학교 기숙사나 행정편의가 아니라 '자연을 자연답게 두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을 두고 인터넷에서도 말들이 많다. 대체적으로 그 구상이라는 것이 '초딩 수준도 되지 않는다' 또는 '경악스럽다'는 반응들이다. 그중에서 비교적 고운 말로 된 것을 소개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최대한 자신의 농지와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갑자기 비오거나 무슨 일 생기면.. 자다가도 논이나 밭에 나가 고랑을 트고 비닐로 덮고 하는데...농민들이 뭐 자신들의 경작지로 아침마다 출근하는 줄 아나보네여...모여살면.. 출근버스 운행해주나?"이번 정류장은 김씨네 논입니다""다음 정류장은 박씨네 밭입니다"그냥 "수해복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될 껄...<다음 라야님>재미있는 글이다. 농민들을 출퇴근 시켜주는 버스를 상상하다 보니 북한 사람들의 집단 농장이 떠오른다. 그것이 아니라도 "다음 정류장은 박씨네 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대통령의 구상에 출퇴근 버스를 운영하는 구상도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현재 오지 마을에 살고 있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곳(실제로는 마을 사람들이 포장하는 것을 반대한다)이니 불편한 것도 많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더 즐긴다. 차량이 없는 집은 읍내까지 가기 위해 몇 시간을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골짜기에도 원주민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이들 대다수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농사를 지어도 먹을 만큼 짓고 농약이나 비료도 안 주며 살아간다. 욕심을 버린 이들에게 이주를 강권한다면 욕심을 가지라는 말과 같으니 정책을 따를 리가 없다.
문명의 세계와 동떨어질 것 같지만 인터넷이 있어 문화적 소외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산꼭대기에 있어도 인터넷만 되면 살아가는 세상에 이 대통령의 뜬금없는 '원대한 구상'에 실소가 절로 나올 뿐이다.
귀농인들에게 인기 좋은 강원도, 건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