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호 청계천 영세상인 이주대책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상인들의 동남권유통단지 이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경준
상인들 "청와대 입성시켜 드리겠다"... MB "저는 말로 한 약속은 지켜요"안규호 청계천 영세상인 이주대책위원장은 4년 전 이명박 대통령의 말만 믿고, 문서 한 장을 받아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신에게 화가 치민다고 했다. 2005년 9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계4가에 위치한 한성관. 36개 청계천 상인단체장들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안규호 위원장은 이명박 시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상인들이 청와대에 입성을 시켜드리겠다. 대신 시장님은 동남권유통단지(가든파이브)에 이주 상인들이 가서 활성화가 잘되도록 끝까지 책임져 달라. 동남권유통단지가 잘 활성화되어야 청계천 복원이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입성하면 청계천 상인들을 불러서 청와대 구경이나 한 번 시켜 달라."안 위원장은 "그 사람(이명박 시장) 꿈은 이미 다 오픈돼 있던 것 아니었느냐"며 "내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이명박 시장의 입이 귀에까지 걸리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위원장은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분양단가였다"며 "(시와 상인간) 협의안을 보면 이주자격자에게 특별분양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내가 (이명박 시장에게) 특별분양가 산정 방식을 문서화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인들의 요구를 받은 이 시장의 답변은 이랬다.
"제가 돌아가면 시청 공무원들 모아놓고 여러분들의 뜻을 더 보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상인들 "청와대 입성하시면 서울시장 입장이랑 틀려집니다. 오늘 말씀하신 내용을 담당자에게 잘 전달해주세요.") 저는 말로 한 약속은 지켜요."비록 구두 약속이긴 했지만, 청계천 공사를 위해 청계천 상인들과 이명박 시장 간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당시 상인들은 이 시장과 나눈 대화를 녹음해뒀다.
결국 상인들의 큰 반발 없이 청계천 공사는 마무리됐고,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청계천 상인들은 2007년 대선을 나흘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열성까지 보였다.
과연 "말로 한 약속은 지킨다"던 이 대통령의 다짐은 지켜졌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상인들과 면담하면서 약속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류유통단지 조성은 2007년 말, 추가단지 조성은 2008년 말 완료''융자조건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시설자금융자에 준한 조치(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당시 이 대통령의 약속대로라면 청계천 상인들은 벌써 동남권유통단지에 입주해 영업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이주는커녕 분양금마저 해결하지 못한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우선 당시 서울시는 각종 청계천 사업설명회에서 분양가가 6000만~7000만 원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현재 동남권유동단지 분양가는 최고 5억7000만 원까지 형성돼 있어, 상인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분양가의 90%까지 융자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상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상권이 형성되려면 최소 2~3년을 버텨야 하는데, 대부분 영세한 상인들에게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와 점포 관리비는 엄청난 부담이다.
또한 당초 2007년 말 입주 예정이었던 사업이 연기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상인들에게 전가됐다. 최한제씨의 경우 2003년 청계천 공사가 시작되면서 청계천 상권이 죽자, 2004년부터 매출이 급감했다. 2007년에는 은행대출금 1억5000만 원을 갚지 못해 채권추심으로 빚더미에 올랐다. 동남권유통단지 입주가 지연될수록 최씨를 비롯한 상인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최씨는 올해 초 동남권유통단지에 입주하려고 했지만 결국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했다. 실제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지난해 말부터 4차례에 걸쳐 분양을 받았지만, 분양률이 30%를 밑돌아 동남권유동단지 개장이 3차례나 연기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