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준법정신이 이렇게도 없는 분이 어떻게 인사청문회 첫 순서인 모두발언에서 그렇게도 법질서, 법과 원칙을 강조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시던가요?
남소연
기업인 '스폰서'(후원자)라고 의혹받는 박경재씨와 몇 차례에 걸쳐 같은 날 같은 곳으로 비행기 타고 출국한 것이나 후보자의 배우자와 박경재씨가 같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같은 제품을 동시에 구매했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이 점에 대해 후보자는 "명절, 휴가 휴라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탄 것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황 부장검사도 15년 넘게 검사 생활 하셨을 텐데, 이런 말을 납득하시나요? 천성관 후보자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후보자가 살 집을 소개해주었고, 차용증도 없이 빌려준 7억5천만 원을 비롯해 총 15억5천만 원을 계좌이체도 아니고 바로 수표로 빌려주던 사람이 박경재씨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씩이나 같은 날 같은 비행기로 같은 나라로 여행을 갔고 같은 면세점에서 같은 상품을 구입했는데,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합니다. 이건 로또 1등 당첨에 견줄 만한 확률 아닌가요?
후보자는 위장전입했습니다. 그냥 했다고 말만 할 뿐 잘못했다거나 유감이라는 형식적 인사도 없었습니다. 법도 질서도 없던 아주 옛날 일도 아닙니다. 1998년입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직부패에 대한 고강도 사정이 있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공직자재산등록 및 공개제도도 실시되었습니다. 대체 준법정신이 이렇게도 없는 분이 어떻게 인사청문회 첫 순서인 모두발언에서 그렇게도 법질서, 법과 원칙을 강조할 수 있는지 황 부장검사는 이해가 되시던가요?
애초 서초구 잠원동에 살던 후보자는 아들을 압구정동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압구정동으로 주소를 바로 옮기지 않고 여의도 쪽으로 옮겼다가 한 달도 안되어 원하던 압구정동으로 주민등록지를 바꿉니다. 두 번 옮기는 주도면밀함을 보였습니다. 자금 세탁하는 것처럼 주소를 세탁한 것인데 범죄 수사하면서 배운 노하우인가요?
불법증거자료를 걸러내지 못하는 검사가 검사입니까?사실 저는 도덕성 문제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천성관 후보자 인사의견서 준비작업을 하면서 후보자가 다루었던 과거 수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살피는 데 주력했습니다. 도덕성 문제가 주로 이야기되는 바람에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격사유가 있습니다. 천 후보자가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을 다루면서 경찰이 가져온 불법도청 자료를 증거자료로 버젓이 제출한 일입니다.
이들 피고인에게 반국가단체 법리를 잘못 적용해서 이적단체 부분만 인정받았다 하는 점을 저는 별로 개의치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천 후보자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온 피의자에 대한 감청허가 영장의 범위를 벗어난 불법도청 자료를 적법한 증거자료라고 법원에 제출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법률전문가인 검사로서 기본소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본소양을 못 갖추다보니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공안검사 경력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했을 일입니다. 그러나 적법한 방법에 따라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적법한 방법, 적법절차 준수.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들었던 말들 아닙니까. 적법성 확보를 위해 검사라는 법률전문가집단을 구성하고 검찰을 대접해주는 것 아닙니까.
이 사건은 재심 판결을 통해 무죄로 고쳐지는 1970∼80년대의 고문조작이 횡행하던 시절의 일도 아닙니다. 1987년 민주화가 된 지 11년이 지난 1998년의 일입니다.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막고 적법하게 수사하도록 지휘하는 게 검사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지휘도 하지 못하고 경찰이 가져온 불법자료를 걸러내지도 못했으니 검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검사들이 스스로 위신을 찾기 바랍니다그리 잘 알지도 못하는 황 부장검사께 이런 편지를 보내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말 전국의 검사들이 '야,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라고 봐서 결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조순형 의원의 매서운 추궁에 천 후보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그러자 조순형 의원이 뭐라고 말씀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 누가 못하냐, 지금 과거 당신의 잘못을 확인하기 위해 청문회하는거 아니냐고 질타했습니다.
천 후보자가 24년 검사생활 동안 수사하고 기소했던 수많은 피고인들도 검사실에서 반성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라며 머리를 조아렸을 것입니다. 황 부장검사께 수사받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했겠지요. 그렇다고 그들의 과거 범죄를 모른 체 하시나요?
검찰총장 후보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잘못했으면 후배 검사들을 생각해서라도 후보자가 물러나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어쩌다 황 부장검사 같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상식을 가진 법률전문가들이 천 후보자 같은 이를 조직의 상관으로 모시게 되었을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전국 1500명 검사들이 측은해지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을 조직의 상관으로 모실 수 없다면서 사표 쓰고 나오는 검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오늘 밤 행복하게 잘 수 있겠습니다. 신영철 대법관 재판간섭 사태 때 30대 중후반의 젊은 단독판사들이 보여준, 절제 되었지만 소신 있는 행동을 검사들에게서도 보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황 부장검사께 그런 결단을 곧바로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한 사람에 불과할 수 있는 한 시민의 마음을 모든 검사들이 알아주고 처신해주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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