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연화, 짚불다비는 조금씩 그 높이를 낮추어 갈뿐 불꽃 한번 뿜어내질 않았습니다.
임윤수
"이 시간에 왜 종을 치느냐?"고 여쭈었더니, "평소 큰 스님께서 공양을 하실 시간이라면서 공양하시라고 종을 쳤다"고 말씀하신다.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하고 계실 것 같은 그분은 큰스님과 헤어지는 애달픔을 이렇듯 공양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싣고 있었다.
준비되어 있던 지푸라기 방망이에 불울 붙이고 "거화!"라는 선창에 따라 연화대에 불을 붙인다. 다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 하나같은 목소리로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소리를 지른다. 지르는 소리들은 컸지만 흔들림이 느껴질 만큼 떨고들 있다. - <스님, 불 들어갑니다> 중에서
<스님, 불 들어갑니다>에서 만나는 내소사 혜산 큰스님의 다비 풍경이다. 43년간 산중에서 참선 수행을 하다 내소사(변산)에서 입적(2005년 6월 13일)하신 '혜산 큰스님'의 다비는 5일 후인 6월 17일에 있었다.
사람들만 스님의 죽음이 슬프고 헤어짐이 애달픈 것이 아니다. 돌아갈 사람들은 웬만큼 돌아간 시간. 홀연히 나타난 개 한 마리가 연화대를 지키고 있다. 108배라도 올리려는 듯 넙죽 엎드린다. 화상이라도 입을까봐 훠이훠이 쫓아보지만 잠시 자리를 떴던 개는 다시 돌아와 타들어가는 연화대의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연화대를 다시 지키고 있다.
내소사 다비에선 연화대를 덮은 멍석이 마를새라 계속 물을 뿌린다. 때문에 개가 앉아 있는 자리에까지 물이 흘러들어 뽀송뽀송하던 털이 진흙탕에 잠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개는 큰 스님이 가시는 길을 끝까지 지켜 드리겠다는 듯 상청의 상주처럼 몇 시간째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혜산 큰 스님의 가르침은 개에게도 불성을 심었나 보다. 그러니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진 슬픔과 가르침의 그 파장들은 오죽하랴 싶다.
"그동안 꽤나 여러 차례 다비장엘 다녀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비장마다 독특한 그런 뭔가가 있는데, 선운사 방식이라고 하는 '짚불다비'는 정말 독특하다. (중략) 여느 다비장에서 보았던 연화대가 호탕하고 호들갑스럽다고 해야 할 만큼 휘휘 불꽃을 뿜어댔다면 짚불다비라고 부르고 있는 내소사 연화대는 조용한 사람들의 배시시한 웃음이나 어깨 들썩거리는 흐느낌처럼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어 불꽃이 보이질 않는다. 계속 뿌려주는 물에 축축하게 젖어 있는 멍석 사이로 연기인지 수증기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뭔가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쩌면 혜산 큰스님의 생전모습이 저 연기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란스럽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이 수행에만 전념하시던 구도자였기에 당신을 다비하고 있는 연화대에서조차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처럼 불자들의 마음으로 유유자적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실 거라는 생각이다." - 책속에서2005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읽었던 혜산 큰 스님의 다비장 이야기를 얼마 전 출간된 <스님, 불 들어갑니다>(불광 출판사 펴냄)에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한 것은 유골마저 남은 생물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어 했던 스님의 보시행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