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o de Santa Catalina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안티구아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문종성
저녁 식사 4시간 전. 우리는 전광석화처럼 맹렬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없는 재료와 반찬은 우리의 취지에 마음을 합해 준 한인 식당의 후원으로 특별 공급받았다.
남은 사람은 부엌에서 감자와 당근을 깎고, 마늘을 까고 다지는 등 제반 준비를 해 놓았다. 하지만 남자 둘이서 갑자기 큰일을 하려니 도무지 정신없었다. 재료가 갖춰지면 일의 순서가 헷갈렸고, 일의 순서대로 할라치면 이번엔 재료가 다 준비되지 않았다. 슬슬 열기가 올라오는 주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알아서 잘해 보라는 듯 끝까지 뒷짐 지고 흐뭇하게 미소 짓더니 주방에는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참 상냥하게 매정하셨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였다. 우리는 어머니의 존재, 그 거대하고도 위대한 자리를 뼈저리게 갈급했다. 치명적 부재의 공간을 도대체 어떻게 메운단 말인가. 준비하면서 정말 서로 사무쳤다. 차라리 설거지와 빨래를 도맡더라도 정말 요리만큼은 잘하는 배우자를 만나야겠다고.
저녁 식사 두 시간 전. 처음으로 완성된 음식은 어묵탕이었다. 기대 반 긴장 반, 김이 모락모락나는 어묵탕을 보며 수저로 국물을 뜬 법수 형. 하지만 국물 맛을 본 그의 얼굴에서는 '야동'이라고 들떠 클릭했다가 '야구동영상'이 뜨는 순간에 짓는 그런 참담한 표정이 연출되었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된 내가 맛을 보았다. ……. 난 차마 법수 형을 끌어안고 울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간장을 더 넣고, 설탕도 넣어보고, 파도 넣었다. 어렵게 공수한 마법의 조미료 다시다도 넣었다. 그리고 다시 몇 분 후 맛 본 어묵탕. 법수 형이 조심스레 수저를 들었다. 내 눈은 오직 그의 입술만 주시했다. 잠시 후, 그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우리의 공약은 허풍이 되고 말 것인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었던 나 역시 국물 한 수저 떠서 급히 입 안에 넣었다.
'앗 뜨거!'
어묵탕은 일단 보류하고 다른 음식부터 신경 쓰기로 했다. 상추를 씻고, 불고기를 먼저 준비했다. 고기를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칼을 잡은 나는 불고기를 최대한 얇게 썰었다. 간만에 도마 위에서 칼질 해보니 소싯적 피자집에서 채소 좀 썰던 가락이 어설프게라도 나와 다행이었다. 그 다음은 볶음밥. 하지만 이걸 어째? 왕초보 요리사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쳐왔다.
저녁 식사 한 시간 전. 밥이 설익었던 것이다. 이 어찌된 영문인가. 홈스테이 하던 집은 우리처럼 전기밥솥이 아닌 불에 때우던 조리방식이었는데 그만 불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평소 땐 불로 때는 밥도 잘만 익더니만 안될 땐 꼭 몰아서 안 되는 법. 하지만 다시 새로 할 수도 없고 불과 물을 적당히 조절해 재차 밥을 찌기로 했다.
부엌 안은 완전 이사 간 집처럼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그릇이 흐트러져 있었고, 비닐과 다른 야채껍질 같은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헤매던 까닭에 기름을 쏟고, 싱크대 위, 아래 모두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오직 음식에만 집중했다. 뒷정리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황금같은 시간이 흐르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도 흘렀다.
저녁 식사 정각. 다행히 볶음밥 야채 준비가 다 되었고, 계란 프라이까지 익혀 잘게 썰어놓았다. 고기를 거의 다 익힌 시점에 식탁에 데코레이션을 시작했다.
저녁 식사 예정 20여 분 후. 모두들 음식 냄새를 맡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보이지 않은 전쟁터였던 부엌은 아수라장이었지만 식탁만큼은 남성 특유의 투박한 멋으로 세팅했다. 마지막으로 내내 골치 썩혔던 어묵탕을 내 왔다. 목구멍이 타 들어갔다.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칭찬에 후한 사람들이라 맛없어도 예의상 웃어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분명 공부 안하고 본 기말고사 점수 확인하는 것보다 더 잔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