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 신부가 지난 2006년 7월 5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와 한미FTA 협상반대를 위한 285리 평화행진을 시작하기 앞서 집회에 참석해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직까지 문정현 신부의 가장 큰 상처는 평택 대추리였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문 신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대추리 주민으로 살던 시절 그는 "살아서는 내 발로 이곳을 나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2007년 4월 자기 발로 대추리를 나와야 했다.
2006년 군대까지 동원됐던 '여명의 황새울' 강제퇴거 작전 이후 주민들은 싸울 기운을 잃었다. 매일 자신을 찾아와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문 신부가 먼저 "견디기 힘들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문 신부보다 먼저 지쳤고, 그는 주민들에게 차마 남자고 할 수 없었다.
당시 범대위에서는 주민들을 설득하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 신부는 "주민들이 지칠 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싸웠나?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자신도 괴로웠다. 매일 술을 마셨다. 그렇게 주민들의 마지막 이주까지 지켜보고 그는 마을의 들개 세 마리와 함께 대추리를 떠났다.
그래서 지금 용산에서도 그는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디 체력을 소모하지 말아라.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 이건 당신들 투쟁이다. 당신들이 싸우는 만큼 나도 싸울 수 있다. 한번 넘어지면 몇 배는 힘들어진다. 제발 체력을 아껴라." 지난 6개월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더 긴 싸움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낙관적이었다. 간단하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엄혹한 유신 때도 싸웠지 않느냐"면서 지난 2007년 33년 만에 재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인혁당 사건을 이야기했다.
"이번엔 5명이지만 그땐 8명이 죽었어. 사람이 납치되고 죽어나가도 어떻게 세상에 알릴 방법도 없었다고. 그때 고인들 시신 뺏기고 싸우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터미널에 내리니까 세상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 아무 일도 없는 거야. 못 이길 줄 알았어. 재심 때도 승소할 거라고 생각 못했어. 그래도 때가 되니까 그날이 오더라. 33년 만에."그에게 물었다. "요즘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유신 때로 돌아갔다고 비판하잖아요. 아닌가요?" 문 신부는 "권력자의 마음은 그때로 돌아가 있지만 아직 유신 때만큼은 아니야, 계엄령도 선포할 수 있고 군대도 동원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암울한 듯했지만,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힘이 예전과 다르잖아,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힘이 터져 나올 거야"라고 희망을 덧붙였다.
오히려 문 신부는 현재 상황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보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도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고, 국가보안법 폐지도 실패하는 등 형식적 민주주의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후퇴를 계기로 그때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시대는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그는 대추리를 나와서 마음을 잡으려고 몸을 혹사시켰다. 손에 익지 않은 목각도 하고 생전 안 해본 농사일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1월 '작은자매의집' 원장직을 은퇴한 뒤 군산 미군기지 이전 지역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군산은 그가 1997년 미군기지반대운동을 시작했던 곳이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보상금 5500만 원으로 집을 사서 기지모니터링도 하고 텃밭도 가꾸고 있다.
용산에 올라온 뒤로는 딱 세 번밖에 못 갔는데 다른 일은 전혀 못하고 먹고 자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이제 어지간한 강골인 문 신부도 체력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얼마 전 경찰과 대치하다가 어깨를 다쳤는데 그게 영 낫지 않아서 팔을 들어올리기도 힘에 부친다.
올해 70세의 노(老) 신부는 용산참사의 유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순환식 공영개발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고 갈 수 있을까. 그는 "할 때까지 하다가 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용산의 싸움이 끝나면 군산으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앞에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그의 집은 용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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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때도 우리가 못 이길 줄 알았어 그런데 때가 되니까 그날이 오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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