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는 위구르인들 "짐승처럼 산다"

[해외리포트-신장 르포①] 철거되는 전통 가옥, 무너지는 민족 공동체

등록 2009.07.11 20:49수정 2009.07.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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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에서도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땅이다. 하지만 지난 5일 우룸치에서 발생한 유혈시위는 낭만적인 이미지 속에 가려진 소수민족 위구르 문제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시위가 발생하기 1주일 전 우룸치, 투르판, 카슈가르 등지를 다녀온 모종혁 통신원의 르포 4편을 통해 경제개발 속에 가려진 위구르인의 고단한 현실과 이번 시위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살펴본다. [편집자말]
 철거되는 카슈가르의 위구르인 촌락. 짧게는 50~6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된 전통가옥이다.
철거되는 카슈가르의 위구르인 촌락. 짧게는 50~6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된 전통가옥이다. 모종혁

"카슈가르(喀什)에 가지 않았다면 신장(新疆)을 보았다고 말하지 마라."

중국의 서쪽 끝 도시 카슈가르는 전통적인 중국 도시와 다르다. 중국 내 여느 도시처럼 중앙광장은 런민(人民)광장이지만, 광장에 인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카슈가르에서 가장 번화하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이드 카흐 모스크와 중시야(中西亞) 바자르다. 중국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이드 카흐 모스크는 밤낮없이 참배객과 관광객으로 몰린다. 중시야 바자르는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온 상인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다.

카슈가르는 지난 2천여 년 동안 실크로드 무역 중개지로 번성해 왔다. 중국과 파키스탄, 타지크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티베트 등을 잇는 동서 교역로의 오아시스 도시로 지금도 영화를 누리고 있다.

카슈가르는 위로는 톈산(天山)산맥, 아래로는 쿤룬(崑崙)산맥, 오른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 왼쪽으로는 파미르고원에 둘러싸여 있다. 열악한 주변 자연환경을 역이용해 주변국과의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여 발전해 왔다.

위구르인들은 카슈가르를 마음의 고향이라 부른다. 오늘날 신장 내 위구르인은 천만 명이 넘는다. 톈산산맥을 경계로 베이장(北疆)은 주로 한족과 카자흐족, 회족, 몽골족이 거주하고, 난장(南疆)에는 위구르인이 80% 이상 거주한다.

2007년 현재 카슈가르지구의 인구는 383.5만 명. 20만 명에 달하는 신장병단 군인 및 직계 가족과 상업 종사자 95만 명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위구르인들이다.


신장의 위구르인은 농업에 주로 종사하는데, 오래전부터 카슈가르는 위구르인의 종교·문화 중심지였다. 한때 불교도였던 위구르인들 중 가장 먼저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도 카슈가르 사람들이었다.

남호선호사상에 남녀 성불균형이 심각한 중국 내지와 달리 이슬람 교리로 무장한 카슈가르의 남녀 비율은 1.04:1로 안정적이다. 카슈가르에는 중국에서 이슬람 사원이 가장 많다. 위구르인의 전통 풍습도 완벽히 보존되어 위구르 문화예술의 메카로 손꼽힌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카슈가르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이드 카흐 모스크에 모여 이슬람 주말 예배인 '주마'를 드린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카슈가르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이드 카흐 모스크에 모여 이슬람 주말 예배인 '주마'를 드린다.모종혁

 예배가 끝나자마자 모스크 앞에 도열하고 나선 위구르 여성들. 갓 예배를 마치고 나온 남성들은 이들이 준비한 물과 음식에 기운을 불어 넣어 알라의 가르침과 은혜를 전달한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모스크 앞에 도열하고 나선 위구르 여성들. 갓 예배를 마치고 나온 남성들은 이들이 준비한 물과 음식에 기운을 불어 넣어 알라의 가르침과 은혜를 전달한다. 모종혁

위구르인들, '마음의 고향' 카슈가르에서 주말마다 이슬람 예배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이드 카흐 모스크 광장은 위구르인들로 붐빈다. 남자들은 모두 위구르식 전통 모자를 쓰고 양탄자를 들고 온다. 여자들은 물이나 음식, 과일 등을 들고 이드 카흐를 찾아온다.

위구르인들이 이드 카흐를 찾는 이유는 이슬람 주말 예배인 '주마'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이슬람교는 신도의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은 평등한 세계종교다. 오직 부지런한 사람만이 모스크 내 예배당에 들어갈 수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뒤늦게 온 신도들도 이슬람교는 배척하지 않는다. 이드 카흐에 들어가 예배할 수 있는 인원수는 3000~4000명.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위구르인들은 모스크 주변에 양탄자를 깔아놓고 예배를 드린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스피커를 통해 성직자인 이맘이 외치는 예배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알라, 아크발!"(신은 위대하다) 아랍어로 진행되는 기도 소리는 이드 카흐를 넘어 카슈가르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이슬람 교의상 여성들은 모스크 안에서 예배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방식으로 예배에 참가한다. 가지고 온 물이나 음식을 예배를 마친 남자들 입가에 대어 기운을 받아 간접적이나마 알라의 가르침과 은혜를 얻어간다.

예배를 마친 위구르 남자들도 곧바로 집으로 가질 않는다. 모스크 주변에 모여든 빈자나 장애인에게 성금을 하거나, 일이 있어 주마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을 찾아 신의 축복을 나누어 준다.

이슬람교에 대한 선입견은 모스크 앞 위구르인 주거마을에서도 날려 보낼 수 있다. 가게 일로 모스크에 갈 수 없는 상인들은 의자에 앉아 코란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예배를 경건하게 드린다.

이드 카흐 광장에서 만난 아무르(32)는 "이슬람교는 형식에 얽매인 강압적인 종교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등 일부 지역에서 자행되는 여성 차별은 해당 지역의 전통 풍속과 관련된 문제"라면서 "이슬람교는 여성은 존중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평등 종교"라고 강조했다.

 수백 년 된 위구르 전통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야와거 촌락 골목. 미로와 같은 골목을 통해 촌락 내 가옥은 연결되고 소통하고 있다.
수백 년 된 위구르 전통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야와거 촌락 골목. 미로와 같은 골목을 통해 촌락 내 가옥은 연결되고 소통하고 있다. 모종혁

 철거되는 야와거 촌락의 한 전통 가옥. 현지의 지방정부는 지진 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통 가옥군 철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철거되는 야와거 촌락의 한 전통 가옥. 현지의 지방정부는 지진 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통 가옥군 철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모종혁

집단촌락에 닥친 위기... 정부의 '지진 취약' 개조 프로젝트 밀어붙이기

모스크와 더불어 위구르인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곳은 위구르인 집단 촌락이다. 위구르인 촌락에는 전통 가옥과 도시 계획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전통 가옥은 짧게는 50~6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보리 짚과 흙을 덧쌓아 지어졌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카슈가르 내 위구르인 촌락은 옛 성곽 내에 크게 6곳으로 나뉘었는데, 현재 옛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은 3곳에 불과하다. 지난 2004년부터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전통 가옥 개조 프로젝트에 따라 위구르인 전통 촌락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대내외적으로 옛 위구르 촌락을 없애기 위해 내건 이유는 전통 가옥이 지진에 약한 구조적 취약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정부는 2004년 발표한 '카슈가르지구 지진대책 및 주민주거 프로젝트'(이하 '프로젝트')를 통해 "지진 등 자연재해가 빈발한 신장에서 항진 내구력이 취약한 전통 가옥은 폭탄물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는 "전통 가옥의 개조 및 철거를 통해 거주환경이 열악한 도시 빈민과 빈농의 생활수준을 개선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정부의 주장에는 일말 일리가 있다. 1902년 카슈가르 외곽에서 리히터 규모 8.0의 강진이 발생해 주민 667명이 숨졌다. 작년에도 불과 160㎞ 떨어진 우이(烏恰)현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일어났었다.

누얼 바이커리 신장자치구 주석은 "2004년 이래 신장에서 리히터 규모 5 이상의 지진만 7차례나 일어났었다"면서 "'프로젝트'를 통해 지진에 강한 아파트로 이사한 주민들은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고 자랑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정부는 작년까지 412억 위안(한화 약 7조6220억원)을 들여 위구르인들의 전통 가옥 철거 및 이주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미 전통 가옥에서 현대식 아파트로 터전을 옮긴 주민은 189만 가구, 836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도시는 37.9만 가구, 농촌은 151.6만 가구에 달한다.

'프로젝트'의 진행은 거칠 것 없는 불도저와 같다. 지역 언론매체에서는 지진 피해의 참상과 신축 아파트에서 기뻐하는 위구르인의 모습을 날마다 보도하면서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집 안에서 구운 도자기를 파는 위구르 여인. 전통 가옥군이 철거될 경우 이들은 생업을 위해 도시 외곽으로 이사해야 한다.
집 안에서 구운 도자기를 파는 위구르 여인. 전통 가옥군이 철거될 경우 이들은 생업을 위해 도시 외곽으로 이사해야 한다.모종혁

 카슈가르에서 가장 오래된 샤허 촌락의 한 골목길에서 위구르 전통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 마른 장작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카슈가르에서 가장 오래된 샤허 촌락의 한 골목길에서 위구르 전통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 마른 장작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모종혁

"전통가옥 파괴되면, 위구르문화도 무너질 것" 국제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의 홍보전에도 불구하고 위구르인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중야 바자르 뒷편 전통 촌락에서 만난 베린마르트(36)는 "정부가 갓 지은 아파트로 옮겨준다고 선전하지만 강요에 의한 다른 선택이 없는 이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던 전통 가옥의 피해 보상액은 쥐꼬리만 한데 새 아파트 입주비용은 그 2~3배에 달한다"며 "거주면적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데다 빚을 얻어 이주를 하는 형편이라 주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고 밝혔다.

런민광장 배후에 있는 야와거 촌락에서 만난 오스만(46)도 "지난 수백 년 동안 별 탈 없이 살아온 우리 집이 언제부터 지진에 약해졌는지 모르겠다"며 "정든 생활 터전을 떠나 친지, 이웃과 이별하려니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위구르인들에게 전통 촌락 내 가옥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집에서는 전통 음식과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왔다.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촌락에서 이웃과 소통하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즉 위구르인 공동체의 보루인 셈이다.

베린마르트는 작년 말 할례를 한 뒤 첫 생일을 맞이한 아들을 위해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장작을 태워 위구르 전통음식을 만들고 친척과 이웃이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전통 촌락 안에서만 가능하다. 집 안에서 도자기를 구워 팔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전통 가옥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지난 4월 스위스 국제관계·안보네트워크(ISN)는 "전통 촌락은 위구르인 문화풍습의 요람"이라며 "중국정부는 이주할 아파트를 현 거주지에서 8~9㎞ 떨어진 곳에 마련하여 위구르인의 전통 문화를 희석시키고 주민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월 27일 미국 <뉴욕타임스>도 "위구르 문화가 깃든 가옥들이 파괴되면, 위구르의 문화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장대학의 한 위구르인 교수는 "신장 전역에서 자행되는 위구르 촌락 및 전통 가옥 철거는 위구르 공동체의 해체가 목적이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대다수 위구르인이 철거 사업에 반대하지만 중국정부의 탄압이 무서워 입을 다물고 있다"면서 "우리는 입은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대놓고 하지 못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정부의 주장대로 전통 촌락군의 철거 사업은 카슈가르 인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철거된 전통 가옥 앞에 설치된 정부의 선전 구호판.
중국정부의 주장대로 전통 촌락군의 철거 사업은 카슈가르 인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철거된 전통 가옥 앞에 설치된 정부의 선전 구호판. 모종혁

덧붙이는 글 | 기사 내 모든 지명과 인명은 위구르어 현지 발음대로 적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 내 모든 지명과 인명은 위구르어 현지 발음대로 적었습니다.
#카슈가르 위구르 #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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