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oS 공격에 20년 역사를 날렸습니다

등록 2009.07.11 16:19수정 2009.07.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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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DDoS 바이러스가 활개를 친다는 뉴스를 건성으로 듣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엊그제 아들놈이 자기 컴퓨터가 꾸지다고 제 서재에 와서 제 컴퓨터를 만졌더랬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컴퓨터를 켰는데 부팅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상쩍어 컴퓨터 수리점 기사를 불렀지요.

 

일단 자료가 중요하니 하드를 다시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깔기 전에 작업 파일들을 살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사가 걱정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는데 메인하드와 보조 하드(각각 120기가), 두 개가 다 초기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이브 인식은 하는데, 완전 포맷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전문가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컴퓨터 복구전문 업체에서도 걱정 말라며 99%는 자신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대신 비용이 하드 하나당 15만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료가 중요하니 자료 파일을 복원하기로 하고 하드디스크를 맡겼습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지났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복구 불가능이라는 것입니다. 아래한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이번 바이러스에 집중공격을 받았는데 먼저 작업 파일들을 압축한 다음 파일 한 개 당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동으로 초기화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노트에 기록한 설교 외에 거의 절반 이상을 보조 하드디스켓에 저장했었는데,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어림짐작으로 주일낮예배, 오후예배 설교를 포함해서 수백편의 설교가 몽땅 한방에 날라가 버린 것입니다. 설교 외에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은 수필, 시, 서평, 논문 등 상당수를 저장해 두었었는데 하나도 건진 것이 없습니다.

 

저는 60초반에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젊어서 설교집을 출간하면 꼴불견인 것 같고 60초반 조기은퇴하면서 제 설교 가운데 엄선해서 설교집을 서너 권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제 오늘은 완전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머리도 띵하고 아스피린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메스껍고, 오늘 아침 다 완성했던 주보(16면)를 다시 만들고 이번 주일 설교준비도 다시 하려고 하니, 속이 부글부글합니다.

 

올해 교단에서 발행하는 성경교재 집필을 맡았는데 여름행사 전에 서둘러서 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원고를 탈고하고 교정을 본다고 프린트를 했는데, 다행히 프린트물이 남아 있어서 이것만은 건지게 되었습니다.

 

완전 백지상태가 된 느낌입니다. 이제 저는 햇병아리 목사가 된 기분이 듭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자만하지 말라고, 네 자신을 비우라고 그런 비상한 조치를 내리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집니다. 어제 오늘 아내와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부린 것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통해서 위에 계신 분의 뜻을 살피게 되고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중요한 작업파일은 외장하드나 메모리 카드를 이용하여 백업을 해두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 50중반에 들어선 사람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2009.07.11 16:19ⓒ 2009 OhmyNews
#디도스 #DDOS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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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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