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내모는 권력의 횡포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전문] 김상근 한국기독교협의회 전 회장 안장식 기도문

등록 2009.07.10 16:41수정 2009.07.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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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내모는 권력의 횡포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김상근 목사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추도사 ⓒ 박정호

▲ "죽음으로 내모는 권력의 횡포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김상근 목사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추도사 ⓒ 박정호

 

먼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안장식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게 구약성서 시편 23편을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은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이제 함께 기도드립시다.

 

하나님,

고 노무현 대통령을 여기 안장하는 예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고 정중하며 정성을 다하여 안장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

저희가 아무리 지극한 사랑으로 안장한다 하더라도 어찌 영부인이 남편을 안장했다 하겠습니까. 저희가 아무리 엄숙하게 안장한다 하더라도 어찌 저 자녀들이 아버지를 안장했다 하겠습니까.

 

저희가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안장한다 하더라도 그와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어찌 대통령을 안장했다 하겠습니까. 저희가 아무리 정중하게 안장한다 하더라도 슬픈 가슴으로 오늘 이 예식에 눈을 모으고 있는 국민들이 어찌 이로써 대통령을 안장했다 하겠습니까. 하나님,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대통령을 그렇게 가게 한 자책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그 캄캄한 괴로움의 골방에, 그 어두운 치욕의 골방에, 그 골수를 쪼개는 고독함의 골방에 그를 홀로 있게 하고 말았다는 자책이 이렇게 깊습니다.

 

직전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내모는 권력, 그 권력의 횡포를 그저 보고만 있었다는 자책이 이렇게 깊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그 때, 벌거벗은 권력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을 그 때, 저희 또한 노무현이 민주정부가 이룬 모든 것을 무위로 만들고 있다고 마음 속으로 돌을 들었던 것을 하나님,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노무현의 진실을, 대통령 노무현의 정치철학을, 아니 '노무현'을 도무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희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노무현, 그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기도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저희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지금, 저희의 불민(不敏)함으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가, 모두가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는 평등의 나라를 지향했던 역사가, 세계가 감탄했던 남북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위기의 길을 내달리고 있는 이 나라, 다시 등을 돌리고 있는 남북 칠천만 겨레를 궁휼히 여겨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사랑하는 노무현을 몸으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구석구석, 역사의 순간순간에 또 한 명 노무현으로, 만 명 노무현으로, 천만 명 노무현으로 살아날 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도와주십시오.

 

사랑하고 존경하는 노무현, 온 국민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는 '노무현 이야기'를 저희의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전할 것입니다. 그의 혼과 정신을 오래토록! 오래토록! 오래토록 이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제 대지의 품에 안긴 대통령 노무현, 그가 짊어졌던 온갖 무거운 모든 짐을 벗겨주신 주께서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종말의 날에 부활의 은총을 입게 하여 주십시오. 유족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격려를 주십시오. 또다시 애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더하여 주십시오.

 

역사의 주이시며 부활의 주이시며 평화의 주이신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09.07.10 16:41ⓒ 2009 OhmyNews
#노무현 #안장식 #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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