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4맨 마지막에 참깨와 참기름을 뿌리고 숟가락 두 개 덩그러니 꽂는다.
김학현
그렇게 툭 한 마디 던지곤 이내 묵은지며 햄, 야채 등을 도마에 얹고 썰어댄다. 이때부터 28년 전의 낭만은 사라진다. 열심히 주걱을 휘저으며 계란프라이로부터 시작하여 다 썬 야채를 넣고 볶는 데까지. 깨소금 술술, 참기름 한 숟가락까지. 불 위에서 하는 모든 작업은 몽땅 내 몫이다.
계란 국물은 없다. 계란 국물은커녕 국물은 아예 없다. 접시에 예쁘게 담겼던 그때의 볶음밥은 그냥 프라이팬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숟가락 두 개 쿡 찔러 넣어 식탁 위에 놓인다. 어기적어기적 입안으로 쑤셔 넣지만 추억과 낭만의 기대와는 달리 입안에서 모래알이 될 뿐이다.
"여보, 이거 퍽퍽해서 먹기가 힘드네.""거참, 잔소리 많네. 그냥 드셔요. 물 있잖아요? 언제 국 끓여요? 귀찮게."난 그리 잘 넘어가지 않는 볶음밥인데 그녀에겐 그냥 예전처럼 맛있는 볶음밥인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냉장고를 뒤져 음료수를 꺼내 마시면서 볶음밥의 목 넘김을 돕는다. 그렇게 프라이팬의 볶음밥이 줄어갈 즈음 아내는 외친다.
"참 당신은 이상해요?""뭐가?""왜 자꾸 남의 쪽 밥을 넘봐요? 당신 쪽의 것이나 드세요.""응? …."그녀의 말에 프라이팬을 보니 내 쪽 밥은 그대로인데, 그녀 쪽 것은 거의 바닥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 쪽의 밥을 먹은 것이다. 프라이팬의 테두리가 높아 이쪽보다는 아내 쪽이 잘 보이니 나도 모르게 한 짓인데, 그녀는 꼭 그걸 지적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알았어! 내 참 드러버서."한 마디 내뱉곤 내 쪽의 밥을 퍼 그녀 쪽으로 밀어붙인다. 좀은 기분 상한 태도를 극렬히 드러내면서.
사랑하는 그녀도, 볶음밥도 그대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