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 속에 들어 있는 금도금 치아
심규상
이들을 기다린 건 긴 구덩이였다. 1미터 깊이에 가로 약 14미터, 세로 2.5미터 크기의 구덩이였다. 구덩이에 70~80명이 두 줄로 늘어서 등을 맞댄 채 무릎을 꿇었다. 의족을 착용한 재소자는 맨 바깥 줄에 자리 잡았다. 이들을 향하고 있던 M1 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칼빈 소총도 불을 뿜었다. 구덩이 안 사람들이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고개를 땅에 떨어트렸다. 머리뼈를 관통한 총알도 많았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골짜기 전체에서 피어올랐다.
곧이어 숨진 희생자들의 몸 위로 돌덩이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땅에 머리를 박고 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 재소자들의 뒷머리 위로, 등 위로 쉴 새 없이 큼직한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시신을 쉽게 매장하기 위해 흙 대신 돌을 채워 넣은 탓이었다. 대충 시신이 가려지자 이들은 총을 들고 부근에 있는 비슷한 크기의 다음 구덩이로 향했다. 이날 총소리는 저녁이 돼서야 그쳤다.
며칠 뒤 소문을 듣고 시신을 찾으러 구덩이를 찾아간 유가족들은 끔찍한 광경에 눈을 감고 코를 틀어막아야 했다. 구덩이 위로 손가락과 다리 등 사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골짜기 전체는 시신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다.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은 퍼질러 앉아 통곡하다 가슴에 한을 품은 채 되돌아와야 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9일 오전 11시 공주 왕촌 살구쟁이 유해발굴 현장에서 중간설명회를 열고 구덩이 3곳에 대한 유해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굵은 빗방울과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김동춘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을 비롯해 공주시 관계자, 곽정근 공주지역 한국전쟁 피해자 유족회장 및 회원, 공주민주단체협의회 회원 등 약 100여 명이 참여했다.
공주~대전 옛길 오른쪽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한 3개의 구덩이에서는 집단 매장된 228구 이상의 유해가 발굴됐다. 이들을 총살하는 데 사용한 M1 탄피 236개와 카빈 탄피 32개, 45구경 탄두 3개, M1 탄두 53개, 카빈 탄두 4개 등도 함께 발굴됐다. 45구경 탄두는 확인사살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골들은 허벅지 뼈와 정강이뼈 등이 겹쳐진 채 엎드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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