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고가도로가 아직 있던 때. 오히려 이때에는 청계천 헌책방거리가 북적이며 싱싱함이 넘쳤습니다. 길바닥에 책이 퍽 많이 나와 있어도, 이렇게 '책이 나와 있는 모습'에 사람들이 구경거리 볼거리가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최종규
그런데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이 '인터넷에서 헌책방 다룬 기사 찾아보기'가 퍽 고달픈 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960년대에 대학교에 다녔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그무렵 '서울 청계천 헌책방'을 다니며 '대학교재를 거저로 얻었다'는 이야기가 몹시 많이 떠돌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유세를 할 때면 어느 유세에서든 꼬박꼬박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라는 말마디가 들어갔습니다. 대통령에 뽑힌 다음에 하는 인사말에도 이 말마디가 들어갔습니다. 대통령으로 뽑힌 뒤에도 서민 경제를 이야기하는 연설글에서 어김없이 이 말마디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앞서 313억이 넘는 큰돈을 내놓았다고 하는 자리에서도 이 말마디를 넣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 일꾼들은, 이렇게 자주 꾸준히 오래도록 당신들을 칭찬하고 알려주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없이 고맙겠구나 싶습니다. 10대 일간지뿐 아니라 온갖 경제신문이며 지역신문이며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라는 글월이 깃들고 있으니까요.
서울 청계천 헌책방 일꾼한테 고맙다고 밝히는 이 글월은 '부자 대통령이지만, 서민을 알고 서민을 걱정하려 한다'는 뜻으로 이명박 정권을 부추깁니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어느 대통령도 '헌책방 아저씨 고맙습니다!' 하고 밝힌 적이 없을 뿐더러, 당신들이 헌책방에 다니며 책을 사서 읽었다고 한 적 또한 없습니다. 반지하와 옥탑방을 모른다 할지라도, '가난한 학생이라면 으레 다니기 마련'이라 하는 헌책방을 안다고 하니, 다른 여느 정치꾼하고는 사뭇 견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몇 해 앞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똑같은 글월로 똑같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있는 말마디,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 퍽 귀에 거슬립니다. 신문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재래 상인들을 일일이 거명한 대목 또한 특기할 만하다"고. 그런데 조금이나마 이 연설글을 눈여겨보았다면 여러 해에 걸쳐 이 연설글이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이어져 왔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대통령후보로 있을 때, 대통령으로 뽑힌 뒤, 대통령으로 정권을 붙잡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연설글은 앞뒤 차례조차 바뀌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회창 님이 김대중 님하고 대통령 자리를 놓고 부딪혔을 무렵, 이회창 님은 당신 자서전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도 이회창 님은 '대학 때 가난해서 청계천 헌책방을 다니며 책을 보았다'고 한 줄쯤 밝혀 놓았습니다. 그 책을 헌책방에서 선 채로 읽고 제자리에 내려놓았기 때문에, 당신 목소리를 고스란히 밝혀 놓지 못해 아쉬운데, 저로서는 정치ㆍ경제ㆍ사회에 내로라하는 분들이 젊을 적 가난한 살림이었을 때에는 한결같이 헌책방마실을 했다고 밝히는 대목이 놀랍습니다.
그렇지만, 썩 반갑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회창 님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대학교재' 사다 읽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