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광고 달려고 가판대 디자인 바꿨나"

상인들 "눈에 잘 안 띄어 매출 줄어"... 가판대 디자인 변경에 볼멘 소리

등록 2009.07.07 11:45수정 2009.07.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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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설치 전후. 오른쪽이 한화빌딩 앞에 새로 설치된 B타입.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설치 전후. 오른쪽이 한화빌딩 앞에 새로 설치된 B타입.서울시 제공

"비 오는 날만 기다려요."

종로 2가에서 가로판매대(가판대)를 운영하는 김아무개 할머니의 말이다. 김 할머니의 가판대는 지난 3월에 디자인이 새롭게 바뀌고 나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서, 이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을 넘기기 어렵다. 취재 전날인 7월 1일에도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12시간 동안의 매출이 1만8천 원이라고 밝혔다. 비 오는 날은 그래도 우산이 제법 팔려서 요즘 김 할머니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특히 김 할머니처럼 담배, 로또 등을 판매할 수 없는 가판대 운영자는 매출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담배와 로또는 허가를 받은 가판대에서만 판매할 수 있고, 현행법상 50m 이내에 담배 판매업소가 있으면 담배판매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도시경관을 위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도록 만든 새 가판대 디자인은 이런 상인들에게 치명적이다.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광고만 도드라질 뿐 옆에서 봐도 상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광고만 도드라질 뿐 옆에서 봐도 상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정재우

담배, 로또를 판매할 수 있는 가판대라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성사 앞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정기호(남·60·가판대연합회 회장)씨는 "옆에서 보면 문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도 알 수 없고, 상품을 밖에 진열할 공간이 줄어서 디자인이 새로 바뀌고 나서 매출이 70%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멀리서도 상품을 볼 수 있어야 와서 뭔가를 살 텐데, 안에다만 진열할 수 있도록 하니 장사가 어렵다"고 했다.

종로의 가판대는 대부분 상황이 비슷했다. 가판대의 매출 감소에는 경기가 안 좋은 점, 편의점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종로 3가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여·51)씨는 "경기가 나쁜 것도 원인이겠지만, 가판대 새로 바뀌고 갑자기 매출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약 27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시 가판대 2800여 개(구두 수선점 포함)의 디자인을 모두 바꿀 예정이다. 디자인을 결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도시 경관과의 조화다. 가판대의 색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색인 기와색을 선택했다. 시민의 보행권을 위해 상품을 최대한 안으로 넣고 밖에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앴다. 시민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가판대로 밥벌이하는 상인들에게는 가혹한 면이 있다.

"부속시설물이기 때문에 가급적 튀지 않고 도시경관에 묻힐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서울시의 새 디자인 목적을 생각하면 가판대의 매출 급감은 당연한 결과다. 이병준 서울시 공공디자인 담당관은 "매출이 줄어든 것은 예전에 법을 어기면서 과도하게 거리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심각하게 보행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운영자들의 입장을 차츰 반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새 가판대에 대한 상인들의 불만이 높다.
서울시 새 가판대에 대한 상인들의 불만이 높다.정재우

상인들은 가판대 뒷면과 한쪽 옆면에 커다랗게 붙은 서울시 광고에도 불만이 있다. 담배를 판매하는 가판대를 운영하는 최아무개(남·70)씨는 "원래 쓰던 담배판매 광고판은 도시경관을 위해 붙일 수 없게 하고는, 이렇게 자기들 광고만 대문짝만하게 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서울시는 가판대 뒷면과 한쪽 옆면의 3분의 1 이상을 시의 정책 홍보를 위해 이용한다. 도시 경관에 묻히기 위해 사용한 기와색이 형형색색의 광고판을 더욱 눈에 띄게 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눈에 잘 띄는 홍보 광고판은 최대한 가판대를 눈에 안 보이게 만들겠다는 애초의 가판대 디자인 의도와도 맞지 않는다. 크기도 문제지만 그 내용도 문제가 됐다. '서울시가 청렴도 1위를 했다'는 등 서울시의 치적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시의 치적이나 사업계획을 광고물에 포함하는 것은 오세훈 시장의 선거법 위반 소지가 될 수 있다"며 수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광고에 대해 정기호씨는 "도시경관을 위해 디자인을 바꿨는지, 광고를 달기 위해서 디자인을 바꿨는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가로판매대 #디자인서울 #매출감소 #서울시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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