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광고만 도드라질 뿐 옆에서 봐도 상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재우
담배, 로또를 판매할 수 있는 가판대라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성사 앞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정기호(남·60·가판대연합회 회장)씨는 "옆에서 보면 문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도 알 수 없고, 상품을 밖에 진열할 공간이 줄어서 디자인이 새로 바뀌고 나서 매출이 70%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멀리서도 상품을 볼 수 있어야 와서 뭔가를 살 텐데, 안에다만 진열할 수 있도록 하니 장사가 어렵다"고 했다.
종로의 가판대는 대부분 상황이 비슷했다. 가판대의 매출 감소에는 경기가 안 좋은 점, 편의점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종로 3가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여·51)씨는 "경기가 나쁜 것도 원인이겠지만, 가판대 새로 바뀌고 갑자기 매출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약 27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시 가판대 2800여 개(구두 수선점 포함)의 디자인을 모두 바꿀 예정이다. 디자인을 결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도시 경관과의 조화다. 가판대의 색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색인 기와색을 선택했다. 시민의 보행권을 위해 상품을 최대한 안으로 넣고 밖에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앴다. 시민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가판대로 밥벌이하는 상인들에게는 가혹한 면이 있다.
"부속시설물이기 때문에 가급적 튀지 않고 도시경관에 묻힐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서울시의 새 디자인 목적을 생각하면 가판대의 매출 급감은 당연한 결과다. 이병준 서울시 공공디자인 담당관은 "매출이 줄어든 것은 예전에 법을 어기면서 과도하게 거리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심각하게 보행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운영자들의 입장을 차츰 반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