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안홍기
DJ는 정장을 가지런히 차려입은 쇠약한 육신을 소파에 꼿꼿이 세운 채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어느 대목에 가서는 목소리를 높였고, 곳곳에 피멍이 든 손을 들어 내젓기도 하면서 격정을 토해냈다.
"50년 동안 독재 치하에서 잃어버린 민주주의, 잃어버린 공명한 경제, 잃어버린 남북 관계를 우리가 10년 동안 찾은 거에요. 역사를 거꾸로 얘기하고 있어요.제일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 때 나라가 가난해졌잖소. 그때 외환보유고가 37억불 아니오. 나라가 갑자기 망하게 됐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금모으기 하는 그런 정성, 국제적인 신임, 정부의 리더십 이런 등등으로 국제적 지원을 얻어서, 내가 청와대 나올때 37억불이 1400억불 됐습니다. 거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1200억불 보탰습니다."자신이 이끌었던 국민의 정부와 이를 이은 참여정부의 10년이 하루 아침에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DJ는 울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80대 중반의 전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이 시점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열심히 저항하고 있는 이는 바로 김 전 대통령인 것으로 보인다.
담벼락에 욕하면 정말 상황이 나아질까? 그렇다면 '연부역강'한 30대인 나에게 DJ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정말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면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일까.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는 DJ의 말은 바로 '각자의 양심을 지켜내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DJ는 마음 속 천사와 악마 얘기로 '양심지키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있어요. 그거 없는 사람이 없어요.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 빼놓고 다 있어요, 천사와 악마가 있는데, 악마가 유혹을 해서 이기면 나쁜 사람이 되고, 악마를 굴복시키고 천사가 이기면 좋은 사람이 되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