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차게 여행을 즐기던 하나가 배탈을 만나서 하룻밤 지독하게 앓았다. 야즈드 올드시티에 있는 여학교 앞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 시소 위에서.
김은주
체헬소툰 궁전 가는 길에 한 차례 배앓이를 했던 작은 애의 증상이 심상찮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스파한 번화가를 걷고 있었는데 작은 애는 괴로워보였습니다. 말도 없고 표정에 그늘이 가득했습니다. 조금 아파서는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씩씩한 아이인데 이 정도로 표를 낸다는 건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쉬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던 작은 애는 축구공이 배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축구공이 배 안에 들어가다니, 아픈 와중에도 유머가 나오나, 하고 생각했는데 곧 축구공이 배 안에 들어갔을 때의 불편함과 아픔이 이해가 돼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몹시 아프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에게 배탈 약을 먹였습니다. 여행 올 때 많은 약을 챙겨왔습니다. 배 아플 때 먹는 약, 두통 약, 다쳤을 때 바르는 소독약과 연고, 근육통이 생겼을 때 붙일 파스 등 약을 한보따리 챙겨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배탈과 관련한 약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물이 바뀌면 배앓이를 많이 한다고 해서 특히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의 배탈이 단순한 소화불량인지, 아니면 식중독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기로 인한 합병증인지는 병원을 가봐야 알 수 있지만 우선은 챙겨온 배탈 약을 먹이기로 했습니다. 배가 아플 때 먹으면 좋다고 약사가 추천해준 유산균 약도 함께 먹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아픈 것은 난이라는 빵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하나를 재우고 배가 고파서 뭐 먹을 걸 찾다가 식탁 위에 있는 난을 먹으려고 봉지를 열었습니다. 난에 곰팡이가 핀 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빵은 아침 일찍 일어난 하나와 내가 식탁에 앉아 사이좋게 뜯어먹었던 빵입니다. 그때는 분명 곰팡이를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곰팡이가 피어있었습니다. 아침에는 곰팡이 균이 잠재해 있다가 따뜻한 실내에 있으면서 저녁 무렵 피어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가 아픈 것은 난이라는 빵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난은 산 지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아깝다고 들고 다니다가 오늘 아침까지 먹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꽤 지난 버터까지 발라 먹었으니 하나가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는 유통기한이나 냉장보관 이런 것에 철두철미한데 여기 와서 여행에서는 뭔가 정신이 좀 나갔는지 어떻게 그런 빵과 버터를 애에게 먹였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했습니다.
여행을 현실과 유리된 걸로 생각했는데 이런 사소한 일상조차도 다른 시간 속에 머무는 걸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하나의 배탈은 나의 부주의에서 생긴 결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