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설원랑.
MBC
중국 영화 <적벽대전> I·II의 제갈공명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다. <선덕여왕> 10부 때 방영된 속함성 전투의 총지휘자 설원랑(미실의 정부, 전노민 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백제군이 무서운 기세로 신라 속함성 등을 빼앗자, 이를 되찾기 위해 결성된 신라 구원군의 총지휘자 설원랑이 구사한 전술은 이른바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살을 베어 주는 대신에 적의 뼈를 끊는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설원랑의 '살'은 '김서현 부대'이고 적의 '뼈'는 속함성의 백제군이었다.
애초 설원랑은 자기 자신은 속함성(경남 함양)으로 진격하고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에게는 아막성(전북 남원) 제1관문을 공격하도록 했다. 지금의 88올림픽고속도로(담양-대구) 구간에 있는 아막성과 속함성 사이의 거리는 대략 서울 중심부에서 수원 정도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설원랑이 속함성으로 진격한다는 척후병의 보고를 받은 백제 본영에서는 속함성에 병력을 증파했다. 그러자 설원랑은 아막성 쪽으로 병력을 돌리는 척했고, '신라군의 진짜 목표는 아막성'이라고 판단한 백제 본영에서는 속함성 부대의 주력을 아막성 쪽으로 부랴부랴 이동시켰다.
<선덕여왕> 속함성 전투, 실제는 어떤 모습?백제군이 아막성 쪽으로 급히 이동하자, 설원랑은 다시 속함성 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소수의 병력만 남은 그 성을 손쉽게 점령했다. 한편, 아막성 제1관문을 점령한 채 대기하고 있던 김서현 부대는 아막성 쪽으로 속속 모여드는 백제군의 기세에 당황하게 되었다.
김서현 부대를 사지에 빠뜨리고서 속함성을 손쉽게 탈환하고는 "육참골단의 병법을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설원랑을 두고 진평왕과 천명공주는 그저 분노를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미실 측은 적군과 정적을 동시에 곤경에 빠뜨리는 설원랑의 계책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제 남은 길은, 신라의 전령이 백제군의 포위를 뚫고 한시라도 바삐 아막성으로 가서 김서현 부대에게 철수명령을 전달하는 일뿐이었다. 목숨을 걸고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는 딱 하나! 아막성 현장에 있는 김서현과 용화향도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큰 애착을 갖고 있을 김유신뿐이었다.
아군을 희생시키고도 아무런 비난을 들을 여지가 없도록 해놓고 비정한 승리를 쟁취한 설원랑은 명실상부한 신라의 제갈공명이었다. 설원랑은 백제로부터 속함성을 탈환한 전투영웅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말이다.
역사속 속함성 전투엔 '설원랑'은 없었다그럼, 속함성 등을 놓고 벌어진 실제의 백제-신라 전투에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실제의 전투에서는 어떤 인물이 영웅으로 기억되었을까?
<삼국사기> 권4 '진평왕 본기' 및 권27 '무왕 본기'에 따르면, 백제가 신라의 속함성을 비롯한 앵잠성·기잠성·봉잠성·기현성·용책성의 여섯 성을 상대로 군사공격(이하 '속함성 전투')을 단행한 시점은 신라 진평왕 46년 및 백제 무왕 25년이었다. 서기로 치면, 624년이었다.
여기서 전투 발생연도를 자세히 언급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설원랑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이 전투를 지휘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위작 논란이 있는 현존 <화랑세기>(필사본) 제7세 풍월주 설원랑 편에 따르면, 설원랑은 549년에 태어나서 606년에 죽었다. 그렇기 때문에 속함성 전투가 벌어졌을 때 설원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전투를 지휘할 수도 없었다. 또 그가 전투를 지휘했다는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의 전투 상황 역시 드라마와는 전혀 판이하게 전개되었다. 백제가 속함성을 비롯한 여섯 성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자, 신라 측에서는 이 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구원군을 파견했다. 하지만, 실제의 신라 구원군은 드라마 속의 신라 구원군과는 전혀 판이했다. 백제군의 기세에 놀란 신라 구원군은 "병법에서는 어려울 때에 물러서야 한다고 했다"면서 시일을 끌며 진격을 늦추다가 결국 회군하고 말았다.
신라 구원군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냥 철수할 정도로 백제군의 기세는 그렇게 대단했다. 그래서 위의 여섯 성 중에서 속함성·기잠성·용책성은 일찌감치 백제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드라마에서처럼 신라군이 육참골단의 기지를 발휘해서 속함성을 탈환하는 기적은 실제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영웅'으로 기억되는 신라군 지휘자 '눌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