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5일, 와세다대학 초청강연회에서 연설중인 양석일 선생.
곽형덕
일제가 낳은 식민주의의 '사생아' 양석일
양석일(梁石日)은? |
1936년 8월 20일 오사카에서 제주도 출신 아버지 양준평과 어머니 이춘옥의 장남으로 태어나, 1952년 오사카 부립 코즈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55년에 졸업했다.
1954년(18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55년 맹장으로 진료소에 입원했다가 당시 입원 중이던 김시종과 만나 그 인연으로 김시종이 주재하던 '진달래'의 동인이 되어 현대시에 눈뜨게 된다. 1957년 조총련과의 대립으로 진달래가 폐간되자 1958년(22세) 김시종과 함께 동인지 '카리온'을 창간한다. 그러나 1960년 '카리온' 폐간 이후 양석일은 문학과 멀어져 간다. 1961년 결혼한 그는 그 해 어머니가 사망하고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3살 위인 누나도 자살하는 등 개인적인 불행을 맞는다. 1962년 득남하고 아버지와 화해한 후 인쇄회사를 차리지만, 1966년(29세) 인쇄회사가 도산하여 큰 빚을 지게 된다.
이후 여자와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삶을 거듭하다, 1970년(34세) 헨리 밀러의 <남회귀선>을 읽고 충격에 빠진다. 갱생을 위해 동경으로 가서 택시운전사가 되어, 1978년 <문예전망>에 옴니버스소설 '미로' '신주쿠에서' '공동생활' '제사'를 발표하고 소설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1980년 택시운전 중 교통사고를 두 차례나 당하고 퇴사한 후, 1981년 첫 소설집 <광조곡>을 간행한다. 1985년(49세) 생활고로 자기매트 판매에 종사하기도 하였지만, 전업 작가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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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일본에서 출판된 <재일문학전집>에 작가 스스로 집필한 '양석일의 작가 이력'(상자기사 참조)을 보면 그는 실패와 좌절의 나날을 거듭한 끝에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소설가로 자리 잡은 것은 사업 실패 후 방랑생활을 하다 도쿄에서 택시기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던 체험을 글로 옮기면서부터다.
양석일이 택시기사가 된 것은 그가 작가가 되는 데 매우 결정적 사건이었다. <택시드라이버>(택시광조곡) 시리즈(1978~)의 첫 문장도 양석일의 택시 운전 체험담으로 시작된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데다 사채업자들까지도 무시하는 택시운전수를 오래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잠시 견딜 요량으로 몸담을 생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기회만 있다면 전직(轉職)을 고대한다. 하지만, 1년이 2년, 3년이 5년이 되는 동안에 전직의 기회는 멀어져가게 된다. 일반회사에서는 연공서열식으로 급료가 가산되어 불완전하기는 해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택시 운전사는 그와 반대이다."양석일은 <택시드라이버> 속에 '재일조선인'을 오버랩 시켰다. 당시 그에게 택시운전은 도시의 중심부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삶(diaspora)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직업이었다.
이 외에도 양석일의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체험이 깊이 투영돼 있다. 양석일에게 아버지 양준평은 '폭력'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 폭력이 얼마나 심했던지 1967년, 당시 30세였던 양석일이 아버지 양준평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피신했을 정도라고.
작품 <피와 뼈>(1998)는 1996년 7월부터 1997년 4월까지 잡지 <산사라>에 연재된 200자 원고지 1000매 분량의 대작으로, 양석일의 아버지에 대한 체험이 뿌리 깊게 투영돼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양석일의 친아버지인 양준평을 그래도 옮겨놓은 듯한 김준평이 등장한다.
양석일이 <피와 뼈>에서 표현하려 했던 폭력의 구조는 매우 중층적이다. 재일조선인의 비극을 양산한 근본적인 폭력은 국가(일제)이다. 일제에 의해 오사카 등지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일본사회의 다양한 폭력(언어를 비롯해 의식주에 이르기까지)에 시달린다.
하지만 재일조선인 사회 내에서도 폭력 구조는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라는 구조 속에서 재생산된다. 이러한 중층적인 폭력구조 속에 김준평의 폭력이 위치하고 있다. 즉, 일본이라는 집단의 '폭력'에 의해 완전히 소외된 김준평이 제국의 폭력 안에 편입되어 약한 자 및 가족(동족)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음이 <피와 뼈>에 나타나는 '폭력'의 이중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