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뱅크 임종록 사장
박창우
전북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만화뱅크'의 임종록(39) 사장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만화에 흠뻑 빠져있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실력이 안돼 만화가는 못되고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대학가 주변의 만화방을 제외한 동네 만화방의 몰락 속에서도 현재 10년째 만화뱅크를 지켜오고 있다. 만화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그를 지난 17일 만나봤다.
사실 지금의 만화뱅크는 임씨가 처음 문을 연 가게는 아니다. 그전부터 있었고, 심지어 임씨가 만화를 보러 자주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비디오·만화책 대여점과 PC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시기 동네 만화방들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만화뱅크 사장 역시 가게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를 보고 임씨가 1999년 자신의 가게를 정리하고 만화뱅크를 인수한 것이다.
"군 제대 후 회사생활을 2년 했거든요. 그런데 IMF가 겹쳐 명예퇴직 바람이 불어 회사를 그만두고 기름 장사를 했어요. 여기 만화뱅크에 기름을 넣으러 자주 왔는데, 가게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인수를 했죠. 왜요? 그냥 만화가 좋았으니까요."
복사본 없으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던 시절 20여 년 전,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만화가 좋아 숱하게 만화방을 들락거렸다. 주위에서는 만화를 본다고 하면 안 좋게 바라보곤 했지만, 그는 보는 거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화 캐릭터를 그릴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금암동 근처에 만화방이 여러 곳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이야 다 없어지고 몇 개 안 남았지만요. 제가 만화방을 많이 다녔는데, 아! 해명해야 할 게 하나 있어요. 텔레비전을 보면 옛날 만화방이 무슨 양아치들 아지트로 그려지곤 하는데, 아니거든요. 제가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대부분 그냥 시간을 보내러 오는 사람들이에요. 만화방에서 껌 씹는 사람은 제가 본 적이 없네요. 하하." 그는 학창시절 <공포의 외인구다> <드래곤볼> <북두시권>과 같은 만화를 즐겨봤고, 또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를 좋아했다고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비본'이라고 불리는 손바닥 만한 만화책 복사본이 없으면 무시당하던 시절이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만화를 보다가 멋진 캐릭터가 나오면 연습장에 그리고, 또 신간이 나오면 제일 먼저 만화방에 달려가고, 그에게 만화는 학창시절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만화를 좋아하면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을 텐데….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랬다.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아….
만화방의 몰락, 힘겨운 유지 1999년 임씨가 만화뱅크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전주에 만화방이 85개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제대로 영업하는 만화방이 채 스무 곳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대학가 주변에 몰려있고, 사실상 동네 만화방은 몰락한 상황이다.
"인터넷의 영향이 크죠. 만화방의 경우 한 달에 새로 나온 만화책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만 200~300만 원 가량 들어요. 그런데,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보거나 인터넷 만화를 보니 만화방을 찾는 사람이 줄고, 결국 운영이 안 돼 문을 닫는 거죠." 임씨는 만화방이 몰락한 이유로 만화가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만화 시장이 어렵다보니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줄어들고, 결국 출판사에서는 재판 위주로 만화책을 발행해 재미있고 신선한 만화책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요즘에는 웹툰 쪽으로 만화가들이 몰려, 오프라인 만화는 그만큼 인기도 없고 고객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만화방에서 마련한 자구책은 바로 요금제다. 예전에는 권당 얼마로 가격을 책정했지만, 약 5~6년 전부터는 시간제로 계산을 하고 있다. 손님들에게 부담없이 만화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만화방을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만화방 유지는 여전히 힘들다.
"사실 만화를 보러 오시는 지금 분들은 10년 전에도 오신 분들이에요. 만화책이 계속 연재가 되니까 쭉 이어서 보는 거죠. 손님 가운데 대부분 90%가 단골이죠. 하지만 새로 늘어나는 고객은 없고, 기존 고객들은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에요. 계속 수입이 줄어드는 거죠. 비디오 대여점이나 PC방 같은 다른 서비스 업종도 마찬가지잖아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다들 늘어나는 손님은 없고 줄어들기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