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진화를 멈출지어다"

[서평] <진화하는 결혼>

등록 2009.06.18 15:09수정 2009.06.18 15:21
0
원고료로 응원
a

ⓒ 작가정신

ⓒ 작가정신

'결혼은 OOO이다'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답할 것인가. 대부분의 기억 언저리에는 '결혼은 미친짓이다'란 영화제목이 맴돌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탄 조지 버나드 쇼는 결혼이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기만적이며 가장 덧없는 감정"이라고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과연 결혼은 이렇게 부정적인 것일까. 결혼이 내포하는 진화인류학적 관점은 무엇일까.

 

미 워싱턴 주 에버그린주립대에서 역사와 가족학을 가르치고 있는 스테파니 쿤츠 교수는 결혼제도가 인류 역사와 함께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에 대한 기원과 본질을 방대한 추적을 통해 집대성한 <진화하는 결혼>을 펴냈다.

 

저자는 연대기식 서술을 택했다. 원제가 < Marriage, a history >이다. 책을 이해하는 데는 연대순을 좇는 것 보다 현재에서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듯 결혼의 역사를 되짚는 방법이 수월해 보인다. 경험하지 못한 역사는 텍스트로 다가올 뿐이고 방대한(주석을 뺀 본문만 515쪽) 양에 질리기 십상인지라.  

 

책의 말미는 결혼의 미래에 대해 '결혼이 과거처럼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애정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도라는 위치를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장식돼 있다. 그렇다면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서로에게 애정과 보살핌의 매개가 효용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현대는 보편적인 결혼의 붕괴 시대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보단 과거란 소리다. 언젤까.

 

결혼은 애정과 보살핌의 제도, 언제?

 

중세로 가보자. 중세 유럽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의 정략결혼 온상이었다. 체스판 같은 '땅따먹기시대' 왕비는 뛰어난 '퀸'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녀들은 결혼지참금으로 가져 온 영토와 재물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마담뚜 역할을 이용해 가신그룹을 만들고 정치력을 행사했다. 철부지 남편 왕이 드센 왕비에게 대들었다가는 왕국의 절반을 뭉텅 잃을 수도 있었다. 이혼 즉시 지참했던 영토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최초의 문헌들이 작성된 시기에 이미 결혼은 재산과 땅을 물려주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됐다. 또 유력한 가문들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력을 확장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군사동맹과 평화조약의 일부가 됐다.   

 

20세기, 1900년대 초기 결혼생활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중요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산업혁명이 19세기의 성적 금기를 깨트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과거 결혼이 유지하던 거의 모든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뒤집어 말하면 여성 성(性)의 강화로 말미암아 사랑이란 감정이 자유롭게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혼은 인간만이 독특하게 취하고 있는 사회적 발명품이다. 결혼이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발명됐다는 논리가 여전히 20세기 초반까지 지배했다. 남성의 보호본능과 여성의 성적매력의 결합이 '사랑'이란 결혼의 상징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가 애정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도로써의 결혼의 가치가 인정받았던 것일까.

 

20세기 초반에야 '사랑'이란 상징 탄생, 진짜? 

 

저자는 20세기 초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변화 덕분에 결혼이 강요당하는 정치적, 경제력 구속력이 약해져서 부부가 감정적으로 친밀해졌다고 추론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남녀 영역이 철저히 구분되고 도덕적 측면에서 부부의 자율권이 사회적 구속력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애정이 생겨날 수 없었던 시대라고 덧붙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결혼이 가장 결혼다웠던 시기는 20세기 초반이다. 이후 1970년대부터는 이를 부정하는 사례들이 발견됨에 따라 이론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혼율이 재앙 수준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붕괴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 붕괴는 급격히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는 결혼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애정과 보살핌은 아니더라도 지나친 물질만능주의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결혼이 '선택'이 됐다고 걱정이다. 오죽했으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까 싶다. 제목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낀 게 아닌지.

 

결혼의 가치를 되씹게 하는 책 

 

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은 남녀, 가정, 사회에 상당한 유익을 가져온다. 삶이 연장되고 가계 수익이 늘어나며 강력범죄가 줄어든다. 또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사회적 혜택도 독신자보다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평균으로 결혼을 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동시에 사회적 평균이 보여주듯 결혼은 할 만한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건전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며 문제를 겪고 있는 부부들을 더 많이 구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좋든 싫든 우리는 개인적인 기대와 사회적인 지원 시스템을 이 새로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20세기 초,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결혼이란 제도에다가 진화억제제 주사 한방을 놨어야 하나?

덧붙이는 글 | <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 쿤츠 /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만5000원

2009.06.18 15:09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 쿤츠 /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만5000원

진화하는 결혼

스테파니 쿤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2009


#결혼 #스테파니 쿤츠 #진화하는 결혼 #김승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